[화물연대 파업 사흘째] 영세기업, 생존위협…'乙'의 횡포에 '乙'이 죽는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6.09 15:54

공장·건설현장 등 줄줄이 '스톱'...현장 곳곳에서 파열음



車 부품업계 "생존권 위협해 절박…파업 즉각 철회해야"



물품 출고 지연·분양 일정 차질 등 소비자 피해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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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총파업 사흘째인 9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도로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트럭을 동원해 물류 이송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김기령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화물연대가 사흘째 파업을 이어가면서 불똥이 튄 영세업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시멘트, 레미콘 공장들이 연이어 ‘셧다운’에 돌입하자 전국 각지 건설 현장들도 공사를 중단할 처지에 놓였다. 자동차 공장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영세 기업이 많은 부품 업계는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호소문까지 냈다.

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화물연대 조합원 4500여명은 전날부터 이날 새벽까지 곳곳에서 철야 대기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화물연대 조합원(2만 2000명)의 약 33% 수준인 7200여명이 이날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국토부는 보고 있다.

현재 전국의 12개 항만은 모두 출입구 봉쇄 없이 정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컨테이너 기지와 공장 등의 출입구가 봉쇄된 곳도 아직 없다.

문제는 업종별로 피해자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설 현장 곳곳에서는 벌써부터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현재 삼표산업의 17개 레미콘 공장이 시멘트 수급 중단으로 가동을 멈춘 상태다. 이외에도 유진기업, 아주기업 등 전국 주요 레미콘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전날 시멘트 출하량은 1만 3660t으로 일평균 대비 10% 가량 감소했다. 파업 첫날인 지난 7일에도 10~15% 가량 출하량이 감소함에 따라 매출 손실은 3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철근 등 자재 가격도 폭등한데다 화물연대 파업까지 겹치면서 공급이 지연되니까 현장에서는 작업에 차질을 많이 빚고 있다"며 "영세한 중소 건설사 같은 경우 기준치 이상으로 폭등한 자재 가격과 오른 인건비를 감당 못해 공사 도중에 공사를 포기하고 잠적하는 업체도 나오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자동차 업계도 생산 차질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전날 오후 2시부터 울산공장 납품 거부에 들어가면서 이틀째 생산라인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화물연대 울산본부는 이날도 울산공장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며 부품 운송 거부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자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들의 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화물연대에 총파업 중단을 요구했다. 조합은 이날 "절박한 생존의 상황에 내몰린 부품업계 종사자를 위해서라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운송 중단을 화물연대는 즉각 철회하길 간곡히 호소한다"며 "화물연대가 단체행동으로 자동차 부품업체의 부품 공급을 막고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초래하게 하는 것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냈다.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소비자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이 신차 인도를 지연시키며 수많은 고객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건설 업계에서는 자칫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로 예정돼 있던 주택 분양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는 ‘대형 악재’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총파업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올해 분양 물량의 공급 시점이 뒤로 밀리고 분양 시장도 어려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파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건설업계나 부동산 시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업 전반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화물연대와의 협상을 단기에 끝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화물연대는 여전히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파업이 벌어지는 일부 지역에서 화물연대 조합원이 운행 중인 화물차에 계란을 투척하는 등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날 오후 충남 서산 대산공단에서는 정상 운행하는 화물차를 몸으로 막던 조합원 6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전날 오전에는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앞에서 공장으로 드나드는 화물차량을 막아선 혐의로 화물연대 조합원 15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국토부는 파업 참여자들의 운송 방해 행위와 물리적 충돌 등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주요 물류거점에 경찰력을 배치하고 운행 차량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화물연대의 정당한 집회 등은 보장하겠지만, 정상 운행차량의 운송을 방해하는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경찰과 협조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에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전차종·전품목 확대 △유가 급등에 대한 대책 마련 △지입제 폐지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안전 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경우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3년 일몰제(2020∼2022년)로 도입돼 오는 12월 31일 종료된다.

화물연대 측은 "안전운임제는 운송료가 연료비 등락에 연동해 오르내리는 합리적인 제도"라며 이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파업에 돌입하는 명분으로는 "정부가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및 제도 확대에 대한 명확한 입장조차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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