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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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
우리나라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5조 9000억원에 달했던 영업수지 적자는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7조 8000억원, 6조 5000억원을 기록했다. 올 여름 폭염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 등으로 한전의 전력구입비를 결정짓는 계통한계가격(SMP)이 급등해 올해 연간 영업수지 적자는 최대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전 적자 누적의 근본 원인은 전력구입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전기요금에 있다. 지난해 전력구입단가는 kwh당 103.2원으로 전년 85.0원에 비해 21.4% 상승했으나 판매단가는 108.1원으로 전년 109.8원에 비해 1.5% 하락했다. 올해도 전력구입단가는 급등하고 있으나 판매단가는 연료비연동제의 경직적 운용으로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오르고 있다.
결국 한전의 적자 누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이 전력구입단가 변동에 맞춰 신축적으로 조정되도록 하는게 해법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뭔가. 당장은 연료비연동제를 실효성 있게 운용하는 것이다. 한전의 전기요금은 지난해부터 연료비 연동제가 적용돼 주기적으로 조정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분기별 연료비 조정단가가 직전 분기 대비 최대 ±5원/kWh으로 제한돼 연료비 급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전력 판매단가가 구입단가 상승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4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각각 kWh당 6.9원, 5월 전기요금이 인상됐고, 10월에 추가적으로 5원 인상될 예정이다. 하지만 분기별 연료비 변동에 따른 연료비 변동분은 7월에 인상된 5원 뿐이고 4월과 10월의 요금인상은 기준연료비(직전 1년간 연료비의 평균치) 상승에 따른 것이다. 결국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연료비 조정 단가의 변동폭을 확대하고 정부가 국민부담을 고려해 행사하는 ‘유보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력회사의 연료비 조정액 상한은 기준 연료비의 1.5배다. 우리보다 운신의 폭이 훨씬 크다.
변동비반영시장(CBP)을 가격입찰시장(PBP)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현 CBP시장에서는 연료비만 반영해 급전순위를 정하지만 배출권비용 등 환경비용이 급증하고 있으므로 이를 포함한 PBP시장으로 전환해 급전 순위를 정하는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석탄에서 가스로의 연료전환도 원활하게 이루어져 온실가스 감축에도 도움이 된다.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 산업용, 교육용 등 용도별 전기요금 차이로 인한 교차보조 문제 해결과 전압별 요금제 도입도 필요하다. 변전소를 별도로 거치지 않고 고압으로 수전하는 산업용 전기는 낮게, 저압으로 수전하는 주택용이나 일반용 전기는 높게 책정하는 방안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소매시장 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소매시장이 자유화되면 전력판매회사의 서비스와 요금메뉴에 대한 수요자의 선택기가 넓어지고 경쟁에 의한 전기요금 인상 억제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현재 전력 시장은 도매시장에서 한전이 유일한 전력 구매자인 구매독점인 동시에, 판매시장에서도 한전이 유일한 판매자인 판매독점 체제로 돼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전력시장을 자유화하기 위해 한전의 발전 부문을 떼내어 6개 발전자회사로 분할했으나, 노무현 정부 들어 자유화 추진 작업을 중단시켰으며, 지금까지 구매독점, 판매독점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정부가 집권한 만큼 전력시장 자유화 논의를 구체적으로 재개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판매시장에서 한전 외에 새로운 사업자들이 진입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력선물시장 도입도 필요하다. 전력 사업자의 리스크관리, 나아가 금융회사, 에너지기업 등 제3자도 전력시장 참여가 가능한 선물시장을 선진국들처럼 도입해야 한다(예: 유럽EEX?Nasdaq Commodities, 미국Nodal Exchange, 호주ASX, 일본TOCOM). 제3차 배출권거래계획기간(2021~2025년)중 도입예정인 배출권 파생상품(선물, 옵션, 스왑 등)에 맞춰 전력선물거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력 선물시장을 도입하면 거래참여자가 증가해 시장이 보다 효율화되고, 시장참가자들이 미래 전기요금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격발견 기능도 생기게 된다.
선진국의 전력소비량 대비 선물거래량을 보면 독일 6.1배, 북유럽·발트3국 3.7배, 이태리 2.8배, 미국 1.3배, 프랑스 1.2배 등으로 돼 있다. 2019년에 전력 선물시장을 도입한 일본도 최근 선물거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전력선물시장 도입을 위해서는 전력시장 자유화가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