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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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
경제학의 기초는 수요와 공급, 그리고 이 두 요소가 일치를 이루는 균형(equilibrium)이다. 일반적으로 수요곡선은 해당 재화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으로 형성되는데,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을 바탕으로 필요로 하는 양의 수준과 그에 상응하는 가격 수준이 정해진다. 또한 공급곡선은 생산자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데, 생산주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생산요소 및 기술의 조합을 통해 비용은 줄이고 이윤은 극대화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해진다.
1970년대의 석유 파동 이후 특정 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에너지경제학에서도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균형이 일반적 자원을 배분하는 경제학의 기본 문제를 다루는 것과 동일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의 중요성과 그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전기라는 재화를 보면, 수요곡선의 경우 Y축과 거의 평행한 수직 모양으로 그려지며, X축을 따라 시간대 별로 필요한 양만큼 좌우로 이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수요곡선이 수직에 가깝다는 것은 가격탄력성이 거의 ‘0(zero)’에 가까워 필수재의 성격을 갖는 재화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전력시장에서의 균형은 양(quantity)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력거래 하루 전에 예측한 수요를 바탕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발전기의 공급량을 시간대별로 산출함으로써, 매 시간 단위로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계통한계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이라고도 하는데, 해당 시간대에 공급하는 발전기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발전 비용을 갖고 있는 발전기의 공급 비용에 해당한다.
이렇게 미리 예측된 전력 수요에 생산량, 즉 공급 수준을 맞추어 조절해 가는 메커니즘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제대로 작동해 왔다. 수요 전망에 맞추어 계획된 공급 가능 자원들에게 가동 여부와 출력량을 지시함으로써, 발전기들의 공급량을 시간대별로 조정해 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이 약 5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2030년 ‘무탄소 섬 Carbon-free Island)’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제주도는 지난 10년 동안 재생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공급 자원의 대부분이계통운영 측면에서의 급전지시를 받지 않는 전원이라는 것이다. 즉, 계통 운영자가 통제할 수 없다. 이로 인하여 전력수요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높아지게 되는 특정 시간대에 전력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불일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과 상대적으로 섬이 많은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인 재화의 생산계획 상에서도 이처럼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때에는 임시적 저장 형태인 재고(Inventory)의 수준을 조정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전기는 저장이 쉽지 않은 재화이며,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그 경제성이 아직 생산자 입장에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결국 제주도에서는 공급 초과가 야기할 수 있는 전력망 과부하에 따른 정전사태를 방지하고자 해당 발전시설들을 강제로 멈추게 하여 전력생산을 하지 않는 출력제한(curtailment)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2015년 기준 연간 3회에서 2021년 기준 연간 64회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른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불만과 반발 또한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한국전기연구원(KERI)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2030년 기준으로 제주도의 출력제어량이 1TWh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미래 상황을 고려해 볼 때에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시점에 이를 해소시킬 수 있는 추가 수요를 발굴하지 않으면, 출력제한으로 인한 문제와 갈등은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에너지를 열, 기체 및 액체 형태의 연료 등 다른 에너지로 전환 및 저장하는 기술들을 총체적으로 P2X(Power-to-X) 기술이라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열(Heat) 에너지로의 전환 및 저장, 수소 등 가스화(Gas) 및 저장, 전기기반 모빌리티(Mobility)에 대한 충전 등이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되어 국내 상황에 적절한 기술 대안이 마련됨으로써, 미래 전력 수급이 보다 더 안정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