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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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공공시설이나 사유시설 가릴 것 없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인명피해마저 발생했다. 지난달 서울 곳곳에 침수 피해를 내고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폭우의 트라우마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역대급이라는 태풍이 또 큰 상처를 준 것이다.
해를 더할수록 기후변화는 가속화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커지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의 온난화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는 한반도에서도 이미 기후위기가 되었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 수준을 넘어서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곳들도 있다. 태평양에 있는 투발루나 키리바시 같은 작은 도서 국가들은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영토가 점점 더 물에 잠기고 있다. 이런 국가들에게는 ‘기후안보(climate security)’라는 말이 절절하게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에서 보면 매우 적은 양이지만 기후위기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협에 처했으니, 이들에게는 기후위기가 곧 기후안보가 되어 있다.
기후위기는 인류 모두가 직면한 절박한 현실이건만, 주요배출국들의 대응은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전 세계 총배출량의 약 3분의 1을 배출하는 중국은 근래에 있었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전격 대만 방문에 대한 보복 조치 중 하나로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의 협력을 거부하겠다고 전했다. 국가안보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은 여전히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미국도 중국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 미국이 정권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태도를 뒤집는 행태를 반복한 것이야 말로 글로벌 레짐의 작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러시아는 산업혁명 이후의 누적배출량으로는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 번째이며, 현재 배출량으로는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네 번째인데, 그런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모자라 핀란드 국경 근처에서 대량의 천연가스를 태우기까지 하고 있으니 도무지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그러나 미·중·러 3대 배출국이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여 왔다고 해서 다른 국가들마저 기후변화 대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양식 있는 국가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에 거대 배출국들도 더욱 적극 참여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한국 역시 커진 경제규모 만큼이나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어 기후변화에 일말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국가이다. 물론 한국이 이런 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2020년에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고, 지난해에는 2030년까지 2018년의 총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겠다는 상향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공언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이 자체적으로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책임 있는 선진경제국으로서 한국이 개도국에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도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쪽으로 더욱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한국은 원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세계 최초의 국가이며, 개발원조위원회(DAC) 국가들 중에서도 빠르게 ODA 규모를 늘리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환경과 관련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빈약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환경 부문과 관련된 ODA 지출도 일관된 목표나 전략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지도 않다.
해외 신규 석탄화력발전 건설을 대상으로 하는 ODA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전체적인 흐름에서 타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ODA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이나 적응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현실이 매우 아쉽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고 있느니 만큼, 한국이 지원하는 ODA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을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사업들을 재점검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선진적인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ODA 사업들을 추진함으로써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에 한국의 ODA가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이는 결국 한국의 국익으로 환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