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힌남노'가 할퀴고 간 포항제철소, "태풍 피해 복구에 임직원 구슬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1.24 11:00

"연말까지 시장에 전 제품 공급 목표…수급 안정화에 총력"



4만4000개 압연 모터 현장 수리… "복구 기간 단축 큰 공"



49년만 고로 휴풍 조치, "신의 한수, 내 자식 지켜낸 결정"

포항

▲포스코 관계자가 냉천 앞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이승주 기자

[포항=에너지경제신문 이승주 기자] "지금 복구하는데 모든 것은 준비됐습니다. 기술도 있고, 자세도 준비돼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열정도 있습니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딱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끝까지 힘내서 대한민국 철강 산업을 살리라고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23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인근. 지난 9월 6일 포항시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포항제철소 바로 앞 이마트는 침수 피해로 인해 폐점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전거길·축구장·체육공원이 조성돼 있던 냉천 옆 둔치공원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냉천은 포항제철소 태풍 피해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태풍 당일 4시간 동안 340mm의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하천이 담을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고 비교적 제방의 높이가 낮은 포항제철소 쪽으로 물이 밀려들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물이 빠져 나가야하는 냉천교에 큰 나무와 토사, 냉장고, 자전거가 얽혀 마치 댐처럼 보였다"며 "자연스럽게 쓰나미처럼 이 지역에 물이 범람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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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압연 2공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복구가 한창인 포항제철소 압연 2공장 입구에는 태풍 당시 수위를 스티커로 표시해놨다. 스티커의 높이는 성인 남자의 허리춤에 달해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압연 공장은 냉천에서 가장 가까운 포항제철소 3문과 인접해있어 피해가 심각했던 곳이다. 당시 여의도 면적의 약 1.2배에 달하는 제철소에 약 620만t의 흙탕물이 유입됐다. 이는 여의도를 2.1m 높이로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압연 2공장 지하 8m 지점에는 길이 450m·폭 12m의 설비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그 면적만 해도 축구장 크기의 5배, 때문에 배수와 토사제거에만 6주가 걸렸다는 설명이다. 현장에는 침수된 설비들을 열심히 닦고 있는 임직원들이 다수 보였다. 바닥은 여전히 미끄럽고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손승락 포스코 열연부장은 "열연 공장에는 약 4만4000개의 모터가 있는데, 무게가 170t에 크기가 집채만한 것도 있다"며 "이 모터를 외부로 다 빼서 수리하면 최소 10개월이 걸리고 새로 만들면 2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46년간 전기 설비를 담당한 명장에게서 현장에서 이를 복구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성과도 있었다"며 "오늘도 복구를 위해 약 1300명의 인력이 투입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압연 공장에서 만난 손병락 EIC기술부 상무보는 포스코에서 46년간 전기 설비를 담당한 포스코 ‘명장 1호’다. 손 상무보는 당시를 떠올리며 "중국의 황하가 연상됐다. 아침에 돼도 물이 무릎까지 차있었는데, 이를 보며 수 많은 직원들이 발을 구르면서 눈물을 흘렸다"며 "이 압연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대한민국 철강 산업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최대 170t에 달하는 압연기용 메인 모터를 수리하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내외 수많은 설비 전문가와 압연기용 메인 모터 제작사조차 수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며 "그러나 수리해서 성능을 복원하는 일은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현재 대형 모터 총 47대 중 33대를 분해·세척·조립 복구하는 데 성공했으며 나머지 모터 복구작업도 공장 재가동 일정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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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임직원이 3고로에서 출선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포스코는 피해를 막기위해 태풍 전날 총 3기의 용광로(고로)를 순차적으로 휴풍(고로를 일시 정지 시키는 것) 조치했다. 이후 포항제철소 고로를 태풍 피해 6일 만에 재가동, 고로안에 쇳물이 굳지 않도록 사철(쇳물을 모래에 버리는 것) 조치도 했다. 완전 재가동 된 제 3고로에서는 눈부신 쇳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제 3고로에서 만난 김진보 포스코 선강부소장은 "50년간 수 백개의 태풍이 지나가도 고로를 사전에 중지한 적이 한번도 없고, 지난 2003년 매미가 왔을 때도 고로 조업은 잘했다"며 "사실 경영팀에서 고로 가동 중지 상태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 고로쟁이들끼리는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500도가 넘는 쇳물에 물이 유입되면, 부피가 급격히 팽창해 고로안의 용적물들이 바람이 들어가야 될 통로로 밀고 들어가 다 막혔을 것이다. 그럼 고로를 새로 지어야한다"며 "지난 30년 동안 쇳물만 보고 살았다. 이 고로는 나한테는 자식과 다름 없다. 지난 30년간 최고 경영자가 수 많은 결정을 했지만, 이번 결정이 제일 잘한 것 같다. 내 자식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현 시점에도 24시간 복구 체계를 유지하며 복구작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현재까지 복구작업에 참여한 인원은 그룹사 임직원, 민·관 ·군 등 외부단체 지원인력 포함 일 평균 약 1만5000명으로, 지난 79일 동안 100만 여 명이 참여했다.

포스코는 연내 2선재, 2냉연, 2열연 등 8개 공장을 추가 복구해 연내 15개 압연공장을 재가동할 계획이다. 천시열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부소장은 "연말까지 시장에 전 제품을 공급해 수급 안정화를 도모 할 수 있을 것"이라며 "2조원이 넘는 엄청난 피해를 당했음에도 고객사와 공급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lsj@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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