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탈원전으로 病 주고 한전법 개정 막아 藥도 빼앗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2.21 10:26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전기가격 대폭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전의 파산을 막으려면 50% 이상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내년 전기요금은 올해 인상분 16%를 포함하여 올초 대비 거의 80% 정도 인상되어, 월평균 사용량(304Kwh) 가구가 매월 지불하는 전기요금은 올해 초 3만 6750원에서 내년에는 약 6만 6000원으로 치솟게 된다.

이번 한전법 개정안 부결은 탈원전 선봉장인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의 반대토론이 결정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양이의원은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므로 전기요금 인상 없는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부결을 호소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으로만 판단하면 올바른 진단과 근본적 해결 방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전채 발행 규모가 이토록 커지게 된 내면의 이유 중 하나가 탈원전 정책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전기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전기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세계 3위 수준으로 매우 높다.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 충격에 취약한 구조라는 의미다.

역대 정부가 세심한 전기요금 관리에 진력한 배경이다. 평상시에는 발전단가가 낮고 연료 공급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원전과 석탄발전의 비중을 높여 가격불안 요인을 최소화하고, 올해와 같은 세계적 에너지위기가 갑자기 닥쳤을 때는 한전채 발행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 압력 일부를 흡수하는 식으로 전기요금 안정 기반을 구축해왔다.

그런데 지난 정부의 과격한 탈원전·탈석탄 정책은 전기요금 안정 기반을 뿌리 체 망가트리고 말았다. 양이 의원은 "탈원전 정책으로 폐쇄한 원전은 월성 1호기뿐이었고, 원전 비중이 29.5%였던 2012년은 고유가로 적자였지만 원전 비중이 29%였던 2020년에는 저유가로 흑자였다는 사실로 볼 때 탈원전을 한전의 적자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사실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전원가를 직접적으로 상승시키는 연료비 인상이 한전 수지를 악화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제는 연료비 인상에 따른 한전 적자의 크기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의 구성 즉 전원믹스가 연료비 인상에 얼마나 민감한가에 따라 적자폭은 크게 달라진다. 대개 연료비 변동은 석유, 가스 가격에서 비롯된다. 올해 에너지대란도 천연가스 가격 폭등이 주원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원전 원료인 우라늄과 석탄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에너지다. 이런 이유로 원전과 석탄발전과 같은 기저전원 비중이 높은 전원믹스는 안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정부 탈원전·탈석탄 정책은 기저전원 비중을 크게 낮췄다. 양이의원 주장처럼 월성1호기 폐쇄만이 탈원전 정책의 결과물이 아니다. 신한울 1·2호기 준공 지체,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신고리 5·6호기 건설 지체, 신규민간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요구 등은 탈원전·탈석탄과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계획이 중단되고 지체되다보니 현재 기저전원 용량은 원래 계획 보다 약 11GW가 부족해졌고 그만큼 우리의 전원믹스는 연료비 인상에 취약한 구조가 된 것이다.

연료비 인상에 대한 완충 능력이 줄어든 전원믹스는 2∼3배 이상 급등한 연료비 인상폭을 그대로 전기가격의 대폭 인상 압력으로 전가시켰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가격 인상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여 인상 속도와 인상폭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한전의 대규모 적자와 한전채 증가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한전채는 탈원전으로 취약해진 전원믹스를 고려하여 처방된 응급처치인 것이다.

따라서 한전법 개정안 부결은 응급처치도 못하게 한 것이다. 병주고 약도 못 먹게 하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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