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회장 거취 미정인데...'관치 논란' 키우는 당국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2.21 17:47

우리금융 이사회, 라임제재 수용 여부 신중론

금융당국, '문책경고' 손태승 회장 거취 압박



"CEO가 우호세력만 두고 그들을 중심으로 경영"

압박 대상 손 회장 넘어 우리금융 사외이사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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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지주.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당국의 라임사태 중징계 건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중징계 수용 여부는 고려해야 할 복잡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결정할 이슈가 아니다."(2022년 12월 16일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

금융당국 수장들이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거취를 놓고 연일 엄포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는 이달 16일 정기이사회 직후 손회장 거취를 포함한 라임 제재 수용 여부에 대해 "고려할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이달 말까지는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나온 직후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작심한 듯 CEO 거취는 물론 과점주주 체계인 우리금융 이사회의 독립성마저 흔드는 발언들을 내놓으면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당국 스스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이사회 9명 중 6명은 지분 4% 이상을 보유한 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노성태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한화생명 추천) △박상용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키움증권 추천) △ 윤인섭 전 한국기업평가 대표(푸본현대생명) △ 정찬형 전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한국투자증권 추천) △장동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IMM PE 추천), △신요환 전 신영증권 대표(유진 PE 추천)가 이에 해당한다. 송수영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는 우리금융지주가 선임한 사외이사이고,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비상임이사다.

과점주주 체계는 이사회가 CEO의 독단적인 결정을 막고, 견제와 균형을 토대로 기업가치 제고와 같은 효율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는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만일 CEO가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금융 이사회가 최근 금융당국의 라임 사태 중징계 수용 여부에 대해 "이달 말까지 논의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이사회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사회가 당국의 중징계를 수용할 경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647억원 규모의 신한투자증권과의 구상권 청구소송 패소, 배임 등 여러 파장들을 감수해야 한다. 당국의 압박처럼 우리금융 이사회가 중징계 수용 여부를 즉각 결정하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전날(20일) 라임 펀드 중징계 건을 두고 "금융위 논의를 거쳐서 내린 의사결정으로 이것이 곧 정부의 뜻"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손 회장을 향한 압박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 인선에 대한 ‘관치금융’ 논란에 대해 "주인이 없는데 CEO가 우호세력만 주변에 두고 그들을 중심으로 경영하는 게 맞냐"고 반문했다. 결정을 유보하는 우리금융 이사회를 손 회장의 이른바 ‘우호세력’이라고 규정하며 압박의 범위를 이사회로 넓힌 것이다.

금융위원장-금감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차 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논의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용퇴를 결정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을 두고 "후배에게 기회를 주는 결정을 보면서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손 회장에 대해서는 "여러 번에 걸친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사실상 만장일치로 결론 난 징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용퇴 결정을 내린 조용병 회장처럼 손 회장 역시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사 CEO 거취에 대한 거듭된 발언들은 "도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우리금융 사외이사가 손 회장 거취에 대해 고심 중인 와중에 정부의 판단에 따르라고 압박한 것은 금융당국 수장 스스로가 ‘관치’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 사태로 CEO가 중징계를 받고 물러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시각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행보를 보면 손 회장 거취를 두고 다급한 쪽은 우리금융 이사회가 아닌 금융당국 같다"며 "중징계라는 당국의 결정을 재차 부각하기보다는 충분한 검토 시간을 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의 지분 매각으로 우리금융이 민영화라는 숙원을 이룬 지 불과 1년도 안된 시점에 정부가 손 회장의 거취를 거듭 압박하는 속내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우리금융의 현 과점주주 체계는 과거 예보의 지분매각을 통해 이뤄진 것이고, 사외이사가 손 회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근거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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