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임대차 시장 下] “집주인도 괴로워요”…계약갱신청구권 악용 사례 급증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1.08 12:56

세입자의 일방적인 계약 중도해지 ‘속출’

갑작스런 퇴거 통보에 집주인들 날벼락

"당장 수억원을 어디서 구하나요"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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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사진=김기령 기자


정부가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임대차 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안정한 양상이다. 고금리 시대를 맞아 월세 선호현상이 짙어지면서 전세 수요 감소로 집주인도 세입자도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다음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보증금을 못 돌려받고 이사를 미루는 세입자가 있는가 하면 세입자를 찾지 못해 집을 공실로 두는 집주인도 생겨났다. 불안한 임대차 시장 현황과 개선 방안에 대해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김모씨는 최근 임차인으로부터 전세가격을 낮춰 재계약하지 않으면 3개월 뒤 나가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임차인은 김씨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도 했다. 김씨는 "1~2억원을 현금으로 쟁여두는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보증금을 돌려줄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침체로 전세가격이 하락하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계약기간이 남았지만 집을 나가겠다며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선포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올해 전국 입주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전세가격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세입자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이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2020년 임대차법 개정을 통해 새롭게 신설된 제도다. 갱신청구권을 통해 임대료 5% 이내 인상을 조건으로 갱신계약된 경우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언제든 계약을 해지하고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집주인들이 갱신계약보다 신규계약을 선호했다. 신규계약 시 더 높은 가격에 임대할 수 있어서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임차인의 주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회에 한해 계약 연장이 가능하게끔 제도를 개선했는데 최근 주택 시장 불황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광명의 한 A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갑자기 집을 빼겠다는 세입자들이 많아지니 임대인들이 다들 초조해하는 눈치"라며 "전세가격 비쌀 때 오히려 임대료를 많이 안 올리고 5%만 올려서 갱신계약했던 임대인들이 가장 억울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차 시장 변화에 따라 전세가격 하락 지속 시 일부 임대가구의 경우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한국은행의 ‘2022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해 전세가격 하락 시나리오별로 임대가구의 전세보증금 반환능력을 점검한 결과 전세보증금 10% 하락시 임대가구의 85.1%는 금융자산 처분만으로 반환이 가능하고 11.2%의 가구는 금융자산 처분과 함께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서 자금 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머지 3.7%의 가구는 금융자산 처분 및 추가 차입을 통해서도 마련하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임차인의 갑작스러운 퇴거 통보에 임대인들이 전세금 반환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전세퇴거자금대출 등 생활안정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전세퇴거자금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하는 생활안정자금 대출 중 하나로 전세금 반환에 사용할 수 있는데 올해부터는 정부의 규제완화로 기존 1억원이었던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가 풀리면서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한도를 충족할 경우 2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출 한도가 낮은 경우 활용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임대인을 중심으로 임대차법을 손질해서 시장 혼란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법 개정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은 전세가격이 하락하고 있어서 임대인이 고충을 겪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다시 전세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임차인의 피해가 또 발생할 수 있어서 법을 바꾸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며 "최근 빌라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깡통전세, 역전세 등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인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girye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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