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은행’ 경종 울린 SVB 사태...은행들 ‘리스크관리’ 고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3.13 15:22

금감원장 "SVB 사태, 특수한 영업구조가 긴축과 맞물려 발생"



SVB, 특정산업 주력 은행 한계..."안정성 취약"



금융당국, 특화은행 설립 추진에 제동걸릴 듯



시중은행, 취약차주 지원 등 리스크관리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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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미국의 벤처캐피탈(VC) 및 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함에 따라 국내 시중은행들도 리스크 관리에 더욱 고삐를 조일 전망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등을 검토 중인 가운데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로 이러한 정책 기조에도 일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리콘밸리은행처럼 대출 자산이 특정 섹터에 집중될 경우 리스크에도 상대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업권별 감독부서, 뉴욕사무소 합동으로 ‘긴급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 SVB 사태가 국내 금융회사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이 원장은 "이번 사태는 SVB의 특수한 영업구조가 최근 금융긴축 과정과 맞물려 발생한 경우"라고 짚었다. 이어 "미국 정부 및 감독당국이 SVB의 모든 예금자를 보호하기로 조치함에 따라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그러나 유사한 영업구조를 갖는 미국 내 금융사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당분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경계감을 갖고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SVB

▲(자료=KB증권)


SVB의 경우 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닌 예금이 87.6%에 달할 정도로 거액 기업예금 위주로 자금을 조달했고, 총 자산의 56.7%를 장기 유가증권에 투자했다. 그러나 최근 금리 상승으로 인해 SVB는 예금조달 비용 증가, 채권 평가손실이라는 악재를 마주했다. 이 과정에서 돈줄이 막힌 기술 기업들의 예금인출까지 늘면서 유동성 문제에 봉착하자 미국 금융당국은 SVB 폐쇄를 결정했다.

SVB와 달리 국내 은행은 예대업무 위주로 유가증권 비중이 총자산의 18%로 낮은 수준이다. SVB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것과 달리 국내 은행들은 LCR 등 유동성 상황도 양호하다. 국내 은행의 외화 LCR은 이달 10일 현재 143.7%로 SVB 사태로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에도 충분히 감내 가능하다는 게 금감원의 진단이다.

특히 일반 상업은행과 달리 SVB는 벤처캐피탈에 집중하며 기술 및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주요 고객이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VB는 고객이 스타트업 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반면 대형은행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 예금 기반이 다각화됐고 재무상태도 양호하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SVB는 특정 산업에 초점을 맞춘 은행이라는 한계로 예금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작년부터 진행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으로 벤처기업 투자 및 유동성이 위축되면서 벤처기업을 통한 예금유치 의존도가 높았던 SVB의 자금유입도 감소했고, 자금조달이 악화된 벤처기업의 예금인출 압박은 커지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즉 이번 SVB 사례는 은행의 포트폴리오와 고객군이 특정부문에 쏠려있을 경우 시스템 안정성 등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진단이다.

시중은행

▲시중은행.(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현재 추진 중인 스몰라이센스 및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등의 정책에도 동력이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은 현재 은행이 수행 중인 업무 범위를 세분화해 특화은행을 설립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중소기업, 소상공인, 벤처기업대출 전문은행, 주택담보대출, 중저신용자 전문은행 등이 유력하게 거론됐는데, 공교롭게도 SVB 사태가 터지면서 당국과 시중은행의 기조가 리스크 관리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일반 기업에 비해 수익 모델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고금리 기조에서는 부실 리스크도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역시 어느 한 쪽에 특화된 은행을 설립하기에는 규모나 자산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SVB 사태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화은행 등의 설립을 추진하기에는 당국도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각 은행들은 SVB 사태를 계기로 리스크 관리 강화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시중은행이 내놓은 취약차주 지원과 별개로 연체율을 상시 모니터링 하는 등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데 기존보다 더욱 고삐를 조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이 손실흡수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데는 당국과 은행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SVB 사태가 국내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상황을 주시하면서 리스크 관리 등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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