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어느 날, 은행에서 일어난 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3.16 15:06

성우창 금융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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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은 어느 날 오전. 거동이 불편한 집안 어르신을 모시고 은행에 갈 일이 있었다. 워낙 고령이신지라 직접 모시기 죄송스러웠지만, 당신 명의로 된 계좌에 관한 일인 데다 대리권을 위임할 서류를 뗄 시간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워 집에서 가까운 K은행 지점에 방문하기로 했다.

문제는 건물 앞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당 은행은 건물 2층에 있었는데, 당장 건물 입구 자동문이 폐쇄돼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했다. 그 문은 자동문 옆에 붙어 폭이 좁았고, 얕은 오르막이 있어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들이기 벅찼다. 보다 못한 건물 청소부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5분은 더 고생해야 했을 터다. 건물에 들어서서도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복도에 굵은 전선을 가로질러 까느라 생긴 큰 턱이 있어 휠체어를 한번 크게 들어야만 했다. 노약자나 장애인이 혼자서 해낼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간신히 은행에 들어서서도 수난은 계속됐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데, 모신 어르신께서 앉아 계시느라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셨다. 하지만 수많은 창구 중 절반가량이 비어있어 앞번호가 빠지는 순서가 느렸다. 뭣보다 ‘노약자우선창구(휠체어거동, 임산부)’, ‘고령·장애인 금융소비자 전담창구’라고 적힌 창구에서도 우리를 외면한 채 정상적인 순번대로 고객을 받고 있었다. ‘고객 여러분들의 양해바랍니다’라는 문구는 어떤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순번이 돌아왔다. 이제 계좌 업무를 위해 계좌주 본인의 서명이 필요했는데, 서명하는 태블릿과 휠체어의 높이가 맞지 않아 어르신께서 팔꿈치를 높이 올리셔야만 했다. 하지만 어르신의 어깨가 좋지 않아 이마저도 여의찮은 상황. 게다가 필요한 서명이 워낙 많아 가까스로 어르신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창구 담당자의 안내 설명은 친절했어도 뾰족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어르신께서는 어깨에서 울리는 고통 속에서도 직원의 시간을 뺏고 있다는 생각에 민망해하시는 마음이 앞선 눈치였다. 간신히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열리지 않는 자동문, 복도에 놓인 높은 턱으로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K은행에서의 불쾌한 경험은 금융권에서 여전히 금융 약자에 대한 배려, 인식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깨닫게 했다. 만일 필자와 같은 조력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은행을 방문하는 노약자·장애인 등이 혼자서, 급박한 상황의 은행 업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예대마진에 의한 실적 잔치로 웃기 전에 진정 고객을 위한 금융 서비스를 철저히 하고 있는지, 은행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인 것 같다.


su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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