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또 쥐어짜란 말이냐"…발전업계, 당정 자구노력 재차 압박에 볼멘소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4.02 14:17

산업부, 2일 개최 예고 ‘에너지공기업 긴급 경영상황 점검회의’ 돌연 취소



에너지 공공기관에 ‘에너지 절약, 경영 혁신 방안 마련’ 등 자구노력 요구



업계 "작년 5.3조원 재정건전화 계획 초과달성…올해 목표도 이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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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 직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역에서 시민들에게 ‘에너지다이어트 10’ 실천방안을 제공, 가정·상점에서 국민들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뭘 또 쥐어짜라는 말이냐."

한국전력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내부에서 집권 국민의힘과 정부의 ‘자구노력’ 요구에 볼멘 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볼멘 소리 중엔 에너지 공기업 경영 정상화의 본질이자 정공법인 요금인상엔 주저하면서 곁가지인 자구노력 압박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당정의 모습을 꼬집은 내용도 포함됐다.

당정이 전기·가스요금 정책 운용에서 국민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시장경제를 외면하고 자꾸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에너지업계는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악화가 마치 방만경영에서 비롯된 것처럼 호도하는 분위기로 당정이 몰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연료비가 상승해 에너지 요금 상승이 불가피한데 당정은 그간 물가안정 등을 이유로 요금 인상 요구를 억누르더니 이제는 에너지 공기업 때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에너지공기업 긴급 경영상황 점검회의’를 갖겠다고 주말 갑자기 예고했다가 회의 개최 불과 1시간 전에 전격 취소했다. 산업부는 당초 배포한 주간보도계획을 수정해 토요일인 전날 오후 2시 언론에 알린 뒤 만 하루도 안 지나 이날 오후 1시 회의 개최 일정을 연기한다고 돌연 공지했다. 산업부는 "공기업 자구노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 등에 시간이 소요되어 불가피하게 연기하게 됐다"고 사유를 설명했다.

산업부는 당초 이날 회의에 정승일 한전 사장,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등을 참석시켜 요금 조정 지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위험성)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산업부가 사전 배포한 회의 관련 보도자료가 일부 보도된 뒤 회의 일정이 연기된 것이다. 이날 오전 일부 언론에 보도된 이 보도자료엔 당정이 지난 31일 회의를 갖고 발표한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일단 보류, 전문가 의견수렴, 에너지공기업 자구노력’ 등과 배치된 내용이 포함됐다. 언론 보도는 "요금인상 지연 시 한전채 발행한도 초과·가스공사 미수금 13조" 등 제목으로 에너지 공급망 위기 및 요금 인상 시급 등 내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공기업 기관장들이 모여 당정이 요구한 자구노력 계획을 내놓기보다는 요금조정 지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업계에선 이날 회의 전격 취소가 여권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을 받아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마치 당정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 여권이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당초 3일 에너지요금 관련 에너지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 일정도 이날 오후 갑자기 취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의 ‘자구노력 피로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부터 에너지다이어트 캠페인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지난주에는 ‘재정건전화·경영혁신 중점 추진과제 현황 및 향후계획’을 통해 지난해 5조3000억원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초과달성한 것에 이어 한전 및 발전 6사 3조3000억원, 가스공사 2조7000억원, 지역난방공사 5038억원 등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한 대책을 보고했다"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란 것인지 모르겠다. 시장원칙이 작동하게 하겠다 더니 지난 정부와 달라진 게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산업부는 지난해부터 공공기관에 난방온도를 17도로 제한하고 비핵심 자산 매각, 에너지절약 캠페인, 복지 축소 등 수차례 경영혁신 과제를 지속 발굴을 요청하고 있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지난달 28일 한전과 공기업 사장단과 ‘제2차 에너지 공기업 경영혁신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에너지 비용 지원이 에너지위기 해결의 답이 될 수 없다"며 "고효율 기기·설비의 보급, 적극적인 효율·절약 관리, 국민 모두의 행동 변화를 통해서만 에너지 비용 부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국제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에 따른 정부 지원과 관련해서는 "에너지 공공기관이 사회공헌활동, 상생협력활동 등을 통해 효율 개선과 전국민 1kWh 줄이기와 같은 에너지 절약 실천과 생활화에 앞장서 노력해야 한다"며 "특히 소상공인이나 농업가, 뿌리기업 등 에너지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에너지 취약부문에 대해서는 취약한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저소비-고효율 구조로 근본적으로 개선해 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각 기관들은 앞으로 비핵심자산을 매각하거나 조직과 인력을 효율화하는 한편, 선별적인 투자를 위해 사업심의 절차를 강화하고 불요불급한 비용 지출을 절감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더욱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러-우 전쟁 장기화, 중국 경제활동 재개 등으로 인해 국제 에너지 가격은 변동성이 높을 전망"이라며 "지난해 한전의 영업적자가 30조원을 넘어서고, 가스공사 미수금이 9조원에 육박하는 등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경제의 필수 기반으로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 에너지 공급에 흔들림이 없도록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하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어 "국민의 에너지 비용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기반 구축과 함께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이번 달부터 또 다시 대국민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지난해 정부의 공공기관 에너지절약 실천 강령에 따라 실내온도 17℃ 지키기, 5층 이내 걷기, 사무실 전등 3분의 1 끄기, 공용시설 사용 후 돌아보기 등 에너지절약을 위한 강도 높은 실천 운동을 펼쳤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됐다"며 "전기를 만들어 파는 회사가 전기를 덜 쓰자고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요금 인상 없이 한전과 국내 전력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전(全)국가적 전기 절약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 됐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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