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정치경제부 정치경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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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인 안회는 어지러운 형국인 위나라로 가서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한다. 공자는 하직 인사를 하러 온 안회에게 "네가 아무리 독실한 말을 할지언정 위나라 왕은 권세로 너의 말솜씨를 이기려 덤벼들 것이니 ‘이화구화’와 같다"며 만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촛불 탄핵’을 기점으로 보수정당의 입지는 중앙정부와 국회, 지방정부 등 모든 곳에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그럼에도 5년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기쁨은 잠시. 대선 이후 지난해 말 이준석 전 대표의 낙마로 지도부가 공석이 되면서 8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이어왔다. 마침내 김기현호로 새 지도부가 꾸려졌지만 출범 한 달만에 지지율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고위원 리스크 늪’에까지 빠졌다.
이번 국민의힘 지도부는 ‘친윤(친윤석열)일색’이다. 당 대표부터 최고위원, 당직 모두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마음)이 구심점이다. 전당대회 준비단계부터 당원들 사이에서도 "무조건 윤심으로 모아야 한다", "내년이 총선이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겨를이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새롭게 탄생한 당 지도부 역시 22대 총선 압승이 숙원 과제다. 당정이 민생을 챙기겠다고 나선 이유도, 야당을 향한 ‘사법리스크’ 저격의 명분을 위해 하영제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가결로 이끌 수 밖에 없던 이유도, 야당의 입법을 저지하는 이유도 모두 집권당 그들이 생각하는 ‘민심’과 지지율을 챙기겠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당원 1호’인 대통령과 당 지지율은 여당의 골칫거리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한 달동안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겨우 벗어났다. 일제 강제징용해법과 근로시간 개편안 등 결정하는 현안마다 여론은 부정적으로 들끓는다. 당 지도부가 대학교 학식을 먹고 청년세대 리더들을 만나면서 상황을 모면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심각한 건 여당 최고위원들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나름대로 수습하고 있지만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 수록 불가’·‘전광훈 목사 우파 진영 천하통일’ 발언에 이어 제주 4·3사건 관련 발언으로도 뭇매를 맞았다. 태영호 최고위원도 "4·3 사건은 김일성 일가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발언을 한 데 이어 사과까지 거부해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조수진 최고위원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비우기’ 운동을 언급해 도마에 올랐다.
최고위원들이 윤 대통령의 결정과 언행에 부가 설명을 하고 나섰지만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4·3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아 야당과 여론의 비판이 잇따르자 이를 수습하고자 ‘4·3 기념식은 3·1절이나 광복절보다 조금 격이 낮은 기념일이니 대통령 불참에 무조건 공격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 조수진 위원 역시 윤 대통령이 양곡법 개정안에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비판 여론이 잇따르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지나친 충성으로 ‘이화구화’가 돼 버렸다. 부정적인 여론의 불씨를 끄려고 나섰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집권당의 임무인 정부 지지율 견인과 총선 압승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도겠지만 민심이나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발언으로 논란만 격화시켰다. 한 마음으로 모인다는 집결력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민심을 살피고 통치자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간언을 할 줄 아는 용기 또한 여당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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