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의 '한글 실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4.11 18:23
조하니 기자

▲조하니 유통중기부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조하니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파격적인 디자인 리뉴얼을 이어가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지속된 실적 부진을 타개하고자 화장품 대표 브랜드의 대대적인 리브랜딩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번 디자인 리뉴얼에서 눈에 띄는 아쉬움이 있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모레퍼시픽 대표 브랜드들이 온통 ‘영어 일색’인 탓에 K-뷰티 정체성이 실종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설화수 스테디셀러 제품 윤조에센스 6세대만 봐도 그렇다. 특유의 한자와 붓칠로 그린 듯한 로고가 사라지고 주황색 영문 로고 Sulwhasoo가 새로 자리잡았다. 한방화장품으로 알려진 설화수는 고급미와 고풍미로 비교적 높은 가격대임에도 부모나 어르신에게 선물하는 효도 화장품으로 꼽힌다.

해외시장을 겨냥해 글로벌 이미지를 강조하고, 중장년 중심의 고객 타깃층을 젊은층까지 넓히겠다는 취지에서 리뉴얼과 함께 젊은 감각을 입혔다지만 설화수라는 한국적인 이름과 달리 제품 어디에도 한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에 로고 변경을 단행한 이니스프리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제주도 비자림에서 착안한 초록색 폰트를 버리고 알파벳 대문자·소문자를 섞은 그래피티 스타일로 새로 입힌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세련된 이미지는 살렸을지 몰라도 이니스프리 하면 떠올리는 ‘자연친화’의 브랜드 정체성이 퇴색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제품 디자인이 통째로 바뀌면서 패키지 겉면마저 전부 ‘영어 범벅’이다. 이달 초 출시한 그린티 씨드 히알루론산 세럼 제품만 살펴봐도 한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색색깔 용기에 화사한 꽃 그림으로 유명했던 바디케어 브랜드 해피바스의 바디워시도 로고와 패키지 모두 갈색 계열 투명한 용기에 영문 로고와 제품명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 리뉴얼 결과, 최소한의 한글 표기가 사라져버려 영어를 잘 읽지 못하는 고객이 구매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리뉴얼 이전에는 아모레퍼시픽 대표 제품의 향과 성분에 따라 형형색색의 패키지와 관련 그림과 이미지를 적용해 고객에게 제품 디자인의 직관성을 높여줬기 때문이다.

심미성 제고와 해외마케팅 확대를 위한 외관 개선도 중요하지만 제품 정보를 잘 알려주는 가독성과 같은 요소도 배려해야 한다. 국내 소비자들이 줄곧 애용해 오던 제품에 한글 표기를 지워냄으로써 디자인 효과를 거둘 지 모르지만, 아모레퍼시픽이 가진 K-뷰티 정체성을 포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inahohc@ekn.kr

조하니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