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발 억제력 강화 평가할 만… 인권문제 신경 써야
송문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정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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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정치칼럼니스트 |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올해 윤석열 정부가 받아 든 가장 절박한 숙제는 한미동맹 복원과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지난 10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방미성과와 지난 1년간의 대북정책에 대해 여야가 엇갈린 평가로 맞서고 있다. 야당은 "깡통외교, 굴종외교, 호구외교"라고 비판하고 여당은 자화자찬이다. 윤 대통령도 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대통령직에 취임한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안보 만큼 큰 변화가 이뤄진 분야가 없다"고 자평했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댔던 대한민국의 안보도 탈바꿈했다"는 윤대통령의 자신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막연한 선의나 장밋빛 희망에 기댄 외교’ 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중앙일보의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72.2%)은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을 포함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찬성표를 던졌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천착했던 문재인인 정부의 노력이 빈 손으로 남은 것에 대한 허탈감과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다. ‘북한을 믿을 수 없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 국민은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강화된 한미동맹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지금 몹시 초조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유럽과의 협력, 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협의체(QUAD ), 나토, 한미일 삼각공조 등으로 중국 봉쇄 고삐를 조이는 미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하락한 북한의 존재감은 더욱 작아질 수 밖에 없다. 북한은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에서 중국에 더욱 밀착하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대만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중국에게도 북한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무시당하는 것과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을 못 참는 북한은 향후 군사적 행동 수위를 높이다가 조만간 핵실험까지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도발이라기보다는 ‘날 좀 보소’라는 관심끌기용 읍소에 가깝다. 그렇지만 당장은 한국정부도 미국 바이든 정부도 북한과의 대화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 구도에서 미국의 주된 관심은 대 중국견제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막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넘어서는 ‘중국 경쟁 2.0(China Competition Bill 2.0)’ 법안을 추진 중이고, 대 중국 봉쇄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 간 북한 핵 공격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선언’한 것 자체만으로도 확장 억제력 강화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워싱턴 선언’만으로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확보한 경우 미국 정부가 워싱턴으로 미사일이 날아올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한국 방위에 발 벗고 나서줄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안보는 불안한데 핵무장하겠다고 동맹국인 미국과 각을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의 약속(워싱턴 선언)만 믿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한국의 딜레마다. 그래서 핵 공유까지는 안가더라도 핵우산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내실 있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한미간 ‘워싱턴선언’부터 한일 ‘셔틀외교’ 복원까지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간 가치에 입각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협력 노선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가 한층 강화될 모양새다. 미 국무부는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진정한 리더십 사례"라며 극찬하지만 전략적 명확성을 선택한 윤 정부를 바라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윤 정부에게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2년이 됐다. 이후에도 소형 전술 핵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무기들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 선언’ 이후 북한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달 고체연료 기반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첫 시험 발사한 이후 아직까지 심각한 무력도발은 감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오랜 대북제재와 함께 코로나 시기 동안 국경이 닫혀 국내경제도 어렵고 정치도 불안정하다. 미국이 계속 북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진 북한은 결국 한국정부와의 대화나 협상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한미관계가 좋은 반면 북미관계가 막혀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 이때가 바로 한국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북한도발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양보만이 답이 아니듯 강 대 강 대응도 능사는 아니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북한과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잃을 것이 더 많은 곳은 한국이고 결국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이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튼튼한 한미동맹과 확고한 억제력을 바탕으로 긴장완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도 모색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잡는 노력을 펴야 한다. 워싱턴선언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자제하면 한미도 자제할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게 인식시킨다면 불필요한 갈등의 증폭을 피할 수 있다.
대북정책 관련한 남남갈등은 그간 상수로 존재해왔다. 대북전단금지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또 다른 남남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 문제 해소에는 진보·보수, 여·야를 떠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납북자 가족을 만나는 등 북한인권 문제를 다시 주목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조지 허버트는 "나쁜 화해라도 화해하는 것이 좋은 판결을 받는 것보다 더 낫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 만큼은 북한 눈치보기나 정치적인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지난 7일 서울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본이 빠진 지난 한미정상회담의 세부적인 내용이 내심 궁금해 기시다 총리가 방한을 서둘렀다는 추측도 있다. 한국의 대일외교도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북핵에 대한 한일 양국 공조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곧 G7, NATO, G20, APEC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과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중요한 외교 이벤트가 줄지어 대기 중이다. 이제는 ‘북핵문제와 불안정한 한반도’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 외교를 펼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