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한국에너지법 연구소 소장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한국에너지법연구소 소장 |
우리나라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모든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과 건물의 단위면적당 에너지사용량이 전년에 비해 각각 5.9%, 2.7% 증가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기준시점인 2018년의 최대치에 비해 적지만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해 에너지절감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국토부는 지적했다.
국토부는 건물 에너지 사용량 증가의 원인으로 건물 신축에 따른 연면적 증가로 인한 냉방 및 난방 수요를 의미하는 냉난방도일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늘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국토부가 발표한 이유는 우리나라 건물 부문 에너지정책의 숨은 이슈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물과 도로, 자동차 등 교통 부문의 에너지정책은 국토부가 주관하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이를 바탕으로 통합해 정책을 발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주거용, 상업용, 산업체 공장 등 모든 건물의 에너지 등급 기준과 건설방식, 자동차, 비행기, 선박 등의 연비 기준, 연료 기준 등은 국토부가 주관한다.
21세기 들어 지난 20여 년 동안 국토부의 건물 부문 정책은 대부분 스마트시티, 유비쿼터스 도시(U-city), 혁신도시 등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도시 개발에 중점을 두어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과제로 부산과 세종시에 추진한 스마트시티가 대표적이다. 환경친화적 도시, 에너지 자급 도시 등은 주요 과제에 들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재생에너지 조차 스마트시티 선정 과정에서 주요 변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나타난 건물 부문, 특히 주거용 에너지사용 패턴의 변화는 국토부의 정책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난방을 전기로 하는 건물이 많이 늘어나면서 건물 부문에서 천연가스 비중보다 전력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다. 어느 새 20%를 훌쩍 넘어버린 1인 가구는 그야말로 냉방과 난방을 팡팡 틀어놓고 지낸다. 일반 가정과 상업용 건물 및 산업용 공장에서 온난화로 인해 냉방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냉난방도일이 늘어난 것, 즉 지구온난화의 진행으로 인해 건물 부문의 에너지사용량이 증가했다고 에너지사용량의 증가 이유를 발표한 것은 그동안의 건물 에너지 관련 대책이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실토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최첨단 ICT 기술과 최첨단 건설기술로 지은 신축 건물들이 에너지효율 측면에서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다.
국토부의 분석은 건물 부문의 구조적인 문제도 비켜갔다. 지금 새로 짓는 건물들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점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기후변화대응 신기술이 미래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고 건설하지 않으면 결국 2050년 근처에 가면 현재의 건물들은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충분히 있어도 설치할 수 없는, 그래서 수명이 남아 있는데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부담은 모두 건물주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많이 양보해 세계 모두의 동의 아래 2050년 기준시점을 그 이후로 늦춘다고 해도 이 문제는 그대로다. 건물의 수명이 30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이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사용량과 국민총생산과의 관계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뒤집혔다는 점이다. 20세기 후반 고도 경제성장 기간에는 에너지사용량이 늘어나면 GDP가 성장하는 구조였다. 즉, 주로 산업부문이 에너지를 사용해 생산을 늘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형태였다. 이 시기에는 따라서 저렴하게 에너지를 공급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이 적절한 정책이었으며 에너지절약 정책은 오히려 경제성장에 해가 되니 앞세울 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 인과관계가 역전됐다. 이제는 에너지사용이 늘어도 경제성장을 유인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고 오히려 경제성장 덕분에 에너지사용량이 늘어나는 인과관계가 주가 되었다. 즉, 부자가 되었기에 에너지를 더 쓰는, 자동차 하나 더 사고, 냉장고도, 에어컨도 더 설치하고…. 이런 변화가 문제라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 선진국들은 모두 이러니까.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에너지 가격을 높이고 에너지절약을 유도하는 정책을 강력히 시행한다. 이제는 에너지절약을 해도 경제성장에 큰 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통계치를 발표하면서 국가 건물 에너지사용량 자료와 분석이 탄소중립 달성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계자료이며 에너지 정책 수립 방향의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건물 부문의 에너지절약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건물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과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활방식이 변했는 데도 현실에 맞춰 정책 기조를 변경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