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 칼럼]국책 vs. 민간 연구기관 경제전망 함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13 08:14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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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모든 경제연구기관들은 나름의 경제 모형이 있다. 다만, 그 경제 모형을 통해 나온 결과는 그 모형을 구성하는 다양한 대내외 경제 변수 중 어느 것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는지, 그리고 현재와 과거 데이터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나아가 지금이 통상적이고 평화스러운 경기 사이클 상에 있는 지, 아니면 이례적이고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 있는 지에 따라 모형에서 도출된 결과를 그대로 인용할 수도, 아니면 일정 부분의 오차를 허용할 수도 있다. 경제 전망이라는 방정식은 단순한 수학 문제가 아니어서 정확한 솔루션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 복잡한 문제는 경제전망이 정태적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 전망 작업을 하는 이 순간에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들은 변화하고, 올해 남은 6개월 동안 전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크고 작은 대내외 여건들도 그 변화 폭은 물론이고 변화의 방향성마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처럼 하반기 경기에 대한 연구기관들의 시각이 ‘상저하고(上低下高)’와 ‘상저하저(上低下低)’로 극명히 갈리게 하는 보다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바로 전망의 뒤에 숨어 있는 함수다. 상저하고는 상반기보다 하반기 경제 상황이 개선된다는 ‘U’자형 경로를 가진 다소 긍정적인 관점의 전망이고, 상저하저는 상반기에 경착륙된 경제 상황이 하반기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L’자형의 비관적 전망이다. 한국은행이나 KDI와 같은 국책연구기관들은 대체로 ‘U’자형의 상저하고 전망을 유지하고, 민간 연구기관들은 ‘L’자형의 상저하저를 전망하는 곳이 많다. 국책 연구기관들이 하반기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정부의 경제 정책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비록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기가 거의 끝났다는 시각이 많지만 그렇다고 바로 금리 인하 국면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민간에서는 고금리로 자금시장이 경색돼 기업들이 투자를 멈추고, 가계 부문에서는 대출에 대한 이자부담이 크게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고금리가 경제를 죽이는 ‘과잉대응(over kill)’의 이슈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하반기 경제가 침체를 보일 것이라는 발언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누가 봐도 ‘L’자형 경기 추세의 책임은 한국은행 탓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저하고에 목을 매는 것이다. 최근 KDI가 그동안 부진했던 경기가 저점을 지나 반등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 즉 상저하고를 시사한 것도 나름의 메시지를 가진다. 그동안 일부 민간연구기관에서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건전성 제고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추경 불가 입장을 고수한다.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상저하저의 장기 불황 국면이 아닌 하반기에 상황이 좋아지는 상저하고의 경기 진단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백업할 수 있는 국책 연구기관의 목소리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굴지의 대기업들마저 줄줄이 실적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민간 연구기관들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금리 인하나 추경 등 경기를 받칠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활성화 대책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러니 하반기 경제 상황을 좋게 전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국책과 민간 연구기관들의 ‘메시지 전망’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 옳을 수 있고 모두 틀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반기 경제 상황이 정부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기를 정말 바란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국민들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그리고 한국 경제도 기지개를 켜고 날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하반기 상황이 모두가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상저하고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도박을 하기에는 실패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최강야구’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자막이 자꾸 생각난다. "야구는 결과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믿음은 잘못된 결정이 된다." 어찌 야구만 그렇겠는가. 세상사 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경제도 결과론, 결과가 좋지 못하면, 지금의 ‘상저하고라는 생각에 따른 무대응이 옳다’라는 믿음은 모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잘못된 결정이 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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