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사재기? 어쩌다 이런 일이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19 15:24
이재명, 교섭단체 대표연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국민의 불안과 우려를 ‘괴담’ 치부하며 사법조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며 "당당하지 못한 처사다. 비겁하다"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사람이 사는 곳엔 늘 소금이 있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소금기둥 이야기가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의인 롯은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가족을 데리고 그곳을 탈출한다. 그때 롯의 아내가 천사의 경고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으로 변했다.

중동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에 사해가 있다. 죽은 바다(死海)라는 뜻이다. 사실은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소금기가 보통 바다보다 열 배나 높다. 동물과 식물이 살지 못해서 사해다. 염기가 높아 헤엄을 치면 붕붕 뜨는 느낌이다. 사해 남서쪽에 소돔산이라는 언덕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곳에 ‘롯의 아내’라고 부르는 소금기둥이 있다.

#지명에도 소금이 들어간 곳이 많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소금(Salz)+성(Burg)이란 뜻이다. 주변에 잘차크 강이 흐른다. 19세기까지 강을 통해 소금을 운반하는 사업이 성행했다.

2002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는 말그대로 소금호수 옆에 세운 도시다. 북서쪽에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가 있다. 이 호수는 미주대륙에서 가장 큰 염호(鹽湖)로 꼽힌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은 염창(鹽倉) 곧 소금창고가 있던 곳이다. 서해안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서울로 운반할 때 집하장 역할을 했다. 마포구 염리동(鹽里洞)은 소금 장수가 많이 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금호수는 자원의 보고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 자리잡은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는 리튬 삼각지대로 불린다. 세 나라에 세계 리튬의 60%가량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리튬은 휴대폰, 전기차의 필수품인 배터리의 원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자원외교가 활발하던 이명박 정부 시절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리튬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발 3600m 고지에 위치한 우유니 사막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사막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소금이 굳어서 사막처럼 보일 뿐이다. 비가 오면 소금 위에 물이 고이면서 하늘과 구름을 땅에 비추는 데칼코마니 장관이 펼쳐진다.

대정부 질문에 답하는 한덕수 총리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한 총리는 야당 의원이 "안전이 검증되면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시겠느냐"고 묻자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 기준에 맞다면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단어에도 소금이 묻어 있다. 봉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샐러리(Salary)는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에서 나왔다. 로마 시대 병사들이 봉급을 받아 소금(Sal)을 사는 데서 유래했다. 동시에 당시 병사들은 봉급을 아예 소금으로 지급받기도 했다. 이국 땅 전쟁터에선 낯선 로마 화폐보다 필수품 소금이 교환가치가 더 높았다. 소금은 조개껍데기와 마찬가지로 1세대 화폐로 기능했다.

소금은 크게 천일염과 암염(巖鹽)으로 나뉜다. 바닷가 염전에서 나오는 게 천일염이다. 반면 영어로 Rock Salt로 부르는 암염은 내륙에서 마치 광물을 캐듯 채굴한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히말리야 핑크 솔트 등이 암염이다. 우리나라엔 암염이 없다.

#소금은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프랑스는 14세기부터 소금에 간접세를 매겼다. 이를 가벨(Gabelle)이라고 했다. 소금을 살 때마다 꼬박꼬박 무는 소금세는 원성이 높았다. 시민의 불만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고, 혁명 이듬해인 1790년 소금세가 폐지됐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1806년에 이를 부활시켰다. 그 뒤에도 폐지, 부활을 거듭하던 소금세는 1945년에 이르러서야 완전 폐지됐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1930년 소금행진을 이끌었다. 영국은 인도 내 소금 생산을 금지하고 오로지 영국산 소금을 수입해서 쓰도록 했다. 수입 소금엔 50% 세금을 매겨 비싸게 팔았다. 386km를 걸어간 간디는 주전자에 바닷물을 담았다. 이튿날 바닷물은 소금이 되었다. 인도 전역에서 소금세에 반대하는 항의가 잇따랐다. 결국 영국은 1931년 소금세를 폐지했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논란의 불똥이 소금으로 튀었다. 국내 염전에서 만든 천일염이 동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쿠시마 원전이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기 전에 ‘깨끗한’ 소금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7월부터 오염수를 방류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판은 두 동강이 났다. 야당은 오염수를 ‘핵 폐수’로 부르겠다고 위협한다. 오염수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고 목청을 높인다. 정부·여당은 야당이 광우병 괴담에 이어 오염수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객관적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할 전문가들도 둘로 갈려 티격태격이다.

일반 국민은 더 헷갈린다. 이럴 땐 최악에 대비하는 게 상수다. 그 결과가 소금 사재기다. 사실 이건 약과다. 방류가 시작되면 상당 기간 생선 소비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공산이 크다. 어민은 물론 횟집 등도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 정치가 수준 이하인 것은 익히 안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국민의 먹거리를 두고 또 이렇게 싸울 줄이야. 어느 쪽도 광우병 파동에서 배운 게 없다.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정치에 진저리가 난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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