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중견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 3월 뱅크런으로 순식간에 문을 달았다. 사진은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
<요약>예금보호한도는 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다. 경제규모, 소득, 예금액 증가 등을 고려하면 손질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보듯 디지털 시대 뱅크런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내 돈은 안전하다"는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관련 법안도 다수 국회에 발의돼 있다.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
예금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올 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순식간에 파산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뱅크런은 디지털런으로 진화했다. 이젠 자기 돈을 찾으러 은행까지 뛰어갈 필요도 없다. 불안하면 스마트폰에서 몇 번 클릭만 하면 된다. 예금보호한도를 높이면 뱅크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은행 등 금융사는 부정적이다. 예금보험료를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재무건전성이 낮지만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으로 예금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예금보험료 부담이 커지면 은행 등은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부담은 고객에게 돌아간다.
예금보호한도를 올릴지 말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하는지 등을 살펴보자.
◇ 지금은 어떻게 보호하나
예금보호제도는 1995년 제정된 예금자보호법에 근거를 둔다. 이듬해인 1996년 예금보험공사가 출범했다. 처음엔 2000만원까지 보호했다. 은행 등이 망해도 2000만원까지는 예보가 대신 지급했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에 보호한도가 5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이 금액이 23년째 그대로다.
은행,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금융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예보에 예금보험료를 낸다. 이런 금융사를 부보(附保) 금융사라 부른다. 보험료율은 업종마다 다르다. 재무 구조가 탄탄한 은행은 예금액 대비 0.08%만 낸다. 보험사와 증권사는 0.15%, 저축은행은 0.4%를 낸다.
예금보호한도 5000만원은 개별 금융사별로 본점·지점 금액을 합친 금액이다. 예컨대 A은행 (가)지점에 4000만원, (나)지점에 6000만원을 예금했다면 A은행 예금액 1억원 중 5000만원만 보호한다.
예외도 있다.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예금과 별도로 보호한다. 여기에 더해 금융위원회는 최근 연금저축과 사고 시 받는 보험금에 대해서도 별도 적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우체국, 농·수협 지역조합에서 가입한 예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개별 법에 따라 자체 기금 등으로 보호를 받는다.
◇ 한도를 올리자는 게 중론
예금보호한도를 높이자는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2001년 5000만원으로 높인 이래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 1인당 소득과 예금액도 몇 배로 불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1년 약 1만1500달러에서 2021년 약 3만5000달러로 늘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작년 2월 당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GDP(국내총생산) 규모 등을 보면 한도를 상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예금보험료율 등 부담이 커지는 부분도 있어 15년간 얘기가 돼왔던 것인데, 충분히 검토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예보는 연구 용역과 민관합동 TF 논의 등을 거쳐 올 8월까지 예금보험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상 드라이브를 거는 와중에 중견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트위터 등으로 SVB가 불안하다는 소문이 돌자 이른바 디지털런이 발생했다. SVB는 36시간만에 문을 닫았다. 불길이 다른 금융사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미국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은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최대 25만달러(약 3억27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한다. 하지만 25만달러도 디지털런 광풍 속에 맥을 추지 못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월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SVB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면 뱅크런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한은과 당국의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
이미 국회에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대다수는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예보가 손질하는 개선안이 8월에 국회에 보고되면 예금보호한도를 높이자는 논의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로고 |
◇ 롤 모델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1930년대 초 대공황이 미국을 짓눌렀다. 은행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망했다. 뱅크런은 수시로 일어났다. FDIC는 은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1933년 출범했다. 초기 예금보호한도는 2500달러였다. 이 금액은 여러차례 바뀌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25만달러로 높아졌다.
FDIC는 정부 예산 지원 없이 회원(부보) 금융사한테 보험료를 걷어서 예금보험기금(DIF)를 쌓는다. 보험료율은 업권별 예금 규모, 위험도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FDIC는 전체 예금의 1.35%를 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2020년의 경우 예금의 1.35%는 1200억달러(약 156조원)에 해당한다.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5명으로 구성한다. 당연직 2명을 빼고 3인은 상원 인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명직 3인의 임기는 6년이다. 대통령은 3인 가운데 한 명을 위원장(임기 5년)으로 임명한다.
큰 틀에서 예금보험공사는 FDIC 체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사회 구성에서 보듯 FDIC는 권한이 훨씬 세다. 예보 내 예금보험위원회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데 예보 사장이 자동으로 위원장을 맡는다.
◇ 금융안정계정 신설은 또다른 이슈
정부는 작년 12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예금보험기금 계정에 금융안정계정을 설치하는 게 핵심이다. 여태껏 금융사 구제금융은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정부는 이걸 사전 대응으로 바꾸려 한다. 금융사가 부실 낌새를 보이면 그 회사가 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미리 금융안정계정을 통해 ‘실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예보 기금 안에는 업권별 고유계정과 저축은행 특별계정이 있다.
미국 FDIC는 2008년 금융위기 때 DGP, 곧 ‘부채 보증 프로그램(Debt Guarantee Program)’을 가동했다. 금융사가 발행한 채권에 사실상 정부가 보증을 선 셈이다. 이는 금융 불안정을 잠재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본 예금보험공사는 위기대응계정을 신설했다.
우리나라 예금보험제도는 크게 두 번 홍역을 치렀다. 외환위기 때는 공적자금을 통해 금융사 부실을 국민이 온전히 떠안았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는 은행 등 다른 업권에 구조조정 비용이 전가됐다. 둘 다 사후 대응이다. 금융안정계정 신설은 사전 대응 장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1억원으로 올리자
예금보호한도는 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다. 소득과 물가 등을 고려하면 손을 볼 때가 됐다. 더구나 SVB 파산에서 보듯 디지털 시대에 금융사 파산은 전광석화처럼 이뤄진다.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산다. 그 어느 때보다 "내 예금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1억원으로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
부작용이 우려된다지만 고객 신뢰 확보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다. 만약 한도 상향으로 예금 쏠림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업권별로 한도를 차등 적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내가 맡긴 예금을 철통같이 지키려면 금융사가 내는 예금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 여파로 대출금리가 높아지거나 예금금리가 낮아질 수 있다. 이는 고객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경제칼럼니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