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IPO 무산 1년...831억 '자사주 매입' 꺼내든 이유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28 06:30

교보생명, 7월 말부터 장외시장서 보통주 210만주 취득



내년 말 금융지주사 설립...분할 과정서 ‘자사주’ 활용할 듯



자사주 취득가격 액면분할 전 환산시 주당 19만8000원



신 회장, 어피니티와 풋옵션 분쟁서 공정가격 주장 가능성

교보생명

▲교보생명.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가 무산된 지 1년 만에 831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 카드를 꺼냈다. 장외시장에서 자사주를 취득해 주주들에게 회사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거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이를 두고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이 내년 말 금융지주사로 출범하기 위한 사전작업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교보생명은 자회사 주식, 현금 등을 분할해 금융지주사를 신설하고, 기존 교보생명 주주들에게는 신설된 금융지주사의 신주를 교부할 방침인데, 이에 앞서 자사주를 취득하게 되면 보다 원활한 주식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우호지분 확보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자사주 취득으로 시장 가격을 형성해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풋옵션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 "교보생명 주식 처분 기회" 다음달 보통주 210만주 취득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오는 7월 31일부터 8월 21일까지 장외시장에서 보통주 210만주를 취득한다. 취득예정금액은 831억6000만원이다. 교보생명 측은 취득 목적에 대해 "주주에게 회사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거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자사주 취득에 나선 것은 지난해 7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무산되고 약 1년 만이다. 교보생명은 당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출하고, FI와의 경영권 분쟁을 자연스럽게 해결한다는 방침이었지만, 한국거래소가 상장 적격에 대해 ‘심사 미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IPO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IPO 무산으로 소액주주, 우리사주조합 등 주주들이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가 사라진 만큼 이번 자사주 취득을 계기로 주주들의 자금 회수를 돕겠다는 게 교보생명의 입장이다. 작년 말 기준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 지분율은 각각 1.35%, 0.98%다.


◇ 자사주 취득 가격 3만9600원...FI와 풋옵션 분쟁 사전포석 해석도


이번 교보생명의 자사주 취득을 두고 투자업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속내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이번 자사주 취득은 교보생명이 내년 말 금융지주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보생명은 두 단계로 금융지주사를 설립할 방침이다. 첫 번째는 인적분할 단계로 교보생명이 보유한 자회사 주식 및 현금 등을 분할해 금융지주사를 신설하고, 기존 교보생명 주주에게는 신설 금융지주사 신주를 교부한다. 이어 교보생명을 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지주사는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를 발행하고, 이 신주에 대한 납입금 대신 교보생명 주식을 현물로 출자 받는다. IB 업계에서는 교보생명이 자사주를 취득해야만 자회사에 지분을 넘기고 금융지주사 설립이 가능한 구조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자사주 취득 물량은 규모가 크지 않아 지주사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IB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 물량을 고려했을 때 (이번 자사주 매입이) 지주사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스텝은 아닌 것 같다"며 "지주사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교보생명이 분할되는 법인으로 자회사 주식을 넘겨야 하는 만큼 일단 테스트베드 형식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는 행보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신 회장이 우호지분을 확보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2대 주주인 어피니티컨소시엄과 또 다른 FI인 어펄마캐피탈이 각각 교보생명 지분 24%, 5.33%를 보유 중인 점을 고려할 때 주요 주주들이 이번 자사주 취득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교보생명이 장외시장에서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FI, 소액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주주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잡음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교보생명

▲교보생명 주요 주주 현황.


특히 업계 안팎에서는 교보생명이 제시한 자사주 취득 가격을 주목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자사주 210만주를 1주당 3만9600원에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액면분할 전 가격으로 환산하면 주당 19만8000원 수준이다. 만일 교보생명이 일부 주주들에게라도 해당 금액으로 자사주를 취득하게 되면 신 회장 입장에서는 향후 어피니티와의 분쟁에서 주당 3만9600원을 시장가격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어피니티는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하며 교보생명 감정가로 주당 40만9000원을 제시했고, 신 회장은 해당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판단해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자사주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이 1주당 3만9600원이라는 가격에 응할 경우 신 회장은 해당 가격이 시장에서 보는 교보생명의 공정시장가치이고, 어피니티가 주장하는 가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 자사주 취득가격, 가치평가에서 제외 일반적...‘엑시트’ 기다리는 FI


문제는 신 회장의 이러한 주장이 실제 FI와의 풋옵션 분쟁에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다. 통상 시장가격의 정의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자유의지를 갖고 협상을 통해 정해진 가격인데, 교보생명이 제시한 취득가격은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산출한 가격이기 때문에 시장가격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나 IB 업계에서는 비상장사의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자사주 취득은 계열사 혹은 특별관계자 거래로 간주하고, 이를 가치평가에서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사주 취득 가격은 회사가 자의적으로 산출한 가격이기 때문에 시장가격으로 인정할 수 없는 논리다. IB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 입장에서는) 여러 사안을 참고해서 주장할 수 있겠지만, FI 입장에서 반박할 수 있는 맹점이 많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보생명 주요 주주들은 교보생명의 지주사 설립이 실제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보생명은 FI에게 내년 말까지 지주사 전환을 하겠다고 시기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주사 전환으로 기업가치가 오르면 FI 입장에서도 투자금 회수가 보다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교보생명은 주요 주주들에게 지주사 전환이 기업가치 제고에도 긍정적이라는 점을 거듭 피력하고,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교보생명 측은 "이번 자사주 취득 결정은 소액주주, 우리사주조합의 니즈와 여러 제반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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