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통화스와프 재개, 어떤 의미가 있나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2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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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8차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과 통화스와프 재개에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요약> 한·일 통화스와프가 8년만에 재개됐다. 100억달러 규모에 3년 기한이다. 대일 통화스와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금액을 점차 예전 최고치인 700억달러까지 늘리는 게 좋겠다. 또한 대미 통화스와프는 지금처럼 임시변통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상설 채널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한·일 통화스와프가 재개됐다. 2015년에 종료된 지 8년만이다. 규모는 100억달러, 기간은 3년이다. 스와프(교환)하는 통화는 미국 달러로 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스즈키 슌이치 재무장관을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른 나라와 맺은 통화스와프는 어떤게 있는지 등을 알아보자.


◇ 정권 따라 출렁인 통화스와프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일본과 처음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금액은 20억달러 규모였다. 외환위기 직후라 우리로선 외화 한 푼이 아쉬울 때다. 한국 돈 원과 일본 돈 엔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엔화는 준 기축통화 대우를 받는다. 미국 달러만은 못해도 국제 결제통화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이 금액이 130억달러(20+30+80억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보수 이명박 정부도 처음엔 대일 통화스와프에 공을 들였다. 잔액은 금세 700억달러(130+270+300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그러다 2012년 8월 사단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격 독도를 방문했다. 전·현직 통틀어 대통령으로 처음 독도 땅을 밟았다.

발끈한 일본은 만기가 돌아온 통화스와프 협정을 연장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규모는 13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등을 두고 일본과 각을 세웠다. 2013년 6월 당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은 통화스와프 연장과 관련, "아직 한국으로부터 요청이 없었다"고 말해 우리 속을 긁었다. 마치 일본이 시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에 우리 정부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2015년 2월 100억달러 만기를 끝으로 한·일 통화스와프는 14년만에 전면 중단됐다.

2015년 12월 양국은 위안부 합의문을 발표했다. 한·일 관계도 개선 기미가 엿보였다. 2016년 8월 재무장관 회담에서 당시 유일호 부총리는 아소 재무장관과 통화스와프 재개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듬해 초 일본은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것을 핑계로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2018년 가을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반발한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통제하고,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뺐다. 문 정부 5년 내내 한·일 관계는 긴장으로 치달았다. 통화스와프 재개는 입도 벙긋 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일본을 찾아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났다. 기시다 총리는 5월 한국을 답방했다. 해빙 무드 속에 수출입 관련 통제도 다 풀렸다. 8년만의 통화스와프 재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 통화스와프 뭐가 좋은가


한·미 통화스와프를 예로 들어보자.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땐 한·미 통화스와프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대신 ‘폭탄’이 터진 뒤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IMF는 ‘상전’ 노릇을 했고 우리는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폭탄’이 터지기 전에 한·미 통화스와프 장치가 가동됐다. 2008년 10월 한국은행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300억달러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그러자 흔들리던 금융시장이 금방 안정을 찾았다.

통화스와프는 일종의 비상금이다. 만약 한국이 달러 고갈로 어려움을 겪으면 미 연준이 언제든 300억달러를 빌려주겠다는 약속이다. 시장은 이를 연준, 곧 미국이 한국의 금융시장 안정을 보증하는 신호로 해석했다. 300억달러 스와프 협정은 2009년 12월 14개월만에 종료됐다.

2020년에도 한국은 대미 통화스와프 덕을 봤다. 코로나 위기가 덮치자 세계 경제가 흔들렸다. 한은은 잽싸게 연준과 600억달러 협정을 맺었다.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한국 경제는 여타 신흥국들과 달리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경상수지 흑자, 대외채권 등 펀더멘털이 탄탄한 데다 여차하면 연준이 나선다는 믿음이 주효한 덕이다. 600억달러 협정은 2021년 12월에 종료됐다.

때늦은 후회이지만, 만일 외환위기 때 우리가 일 터지기 전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가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 한·중 스와프는 590억달러 규모


한국과 중국은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던 2009년 봄에 260억달러 규모로 통화스와프를 처음 체결했다. 한국 원과 중국 위안을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위안은 쓰임새가 점차 넓어지고 있긴 하나 아직 국제통화로 인정받기엔 이르다. 그럼에도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게 나쁘지 않다.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통화스와프 정책을 적극 펴고 있다. 2014년 한·중 통화스와파는 560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2017년 가을엔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을 빌미로 통화스와프 협정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중국은 별 이견 없이 3년 연장에 동의했다. 이어 2020년엔 규모를 오히려 590억달러로 키우는 한편 기간도 5년으로 늘렸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작업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미국, 중국 외에도 한국은 여러 나라와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캐나다, 스위스, 호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다. 특히 캐나다와 맺은 협정은 한도가 없다. 아세안 국가들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곧 다자간 통화스와프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원화 국제화에도 도움을 준다.


◇ 남은 과제는


대일 통화스와프는 규모를 점차 키우는 게 좋다. 적어도 예전 최고액인 700억달러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 펀더멘털에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은 외환보유액 세계 9위국이며, 대외채무보다 대외채권이 더 많은 순채권국이다. 국제사회에선 선진국 대우를 받는다. 25년 전 외환위기 또는 15년 전 금융위기 때처럼 달러 고갈로 비틀거릴 체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장치를 겹겹이 마련해서 손해 볼 게 없다. 국제 금융위기 대가인 찰스 킨들버거 교수(전 MIT)는 저서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금융위기를 ‘계속 피어 오르는 질긴 다년생화’라고 불렀다.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금융위기로 언제 어디서 둑이 무너질지 모른다. 이런 때 대일 통화스와프는 둑을 지탱하는 보강재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미 통화스와프는 장기적으로 상설 채널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기한·금액에 제한을 둔 임시변통 성격의 통화스와프가 아니라 무기한·무제한 채널을 마련하면 좋다. 현재 미국은 유럽연합(EU), 영국, 스위스, 캐나다, 일본 등 5개국(지역)과 2013년부터 상설 유동성 스와프 라인(standing liquidity swap lines)을 가동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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