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거래소도 작전에 당했다
무자본M&A 통해 인수뒤 부실…법원 덕에 '기사회생'
여행 자회사 부실 감추고 허위성 보도자료 배포해
법원 "기회 줘야"… 금투업계 "거래소 권위 큰 흠집"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
‘쌍용자동차 인수’라는 재료로 당시 인수 주체로 나섰던 에디슨모터스의 주가를 조작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일당들이 구속 기소됐다. 쌍용차 인수전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치러졌고 그 과정에서 불공정거래를 통해 한몫 챙기려 한 일당들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 일당들의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10여년 전부터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주가조작과 무자본M&A를 통해 수많은 개미를 울려온 세력이다. 에너지경제는 이번에 구속된 일당 중 전체적인 작전의 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알려진 ‘이 씨’에 대해 집중 해부해봤다. [편집자주]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 최근 구속된 ‘이 씨’의 작전에는 일반 개미 투자자들만 희생된 게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을 운영하는 한국거래소도 ‘이 씨’에게 일격을 당한 바 있다. 과거 거래소는 이 세력의 작전에 활용되던 상장사에 대한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지만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역사상 처음으로 결정을 번복하는 ‘치욕’을 겪었다.
바로 코스닥 상장사 감마누 예기다. 현재는 휴림네트웍스라는 사명으로 교체한 이 상장사는 한 때 9만원이 넘는 주가를 자랑했지만 현재는 600원대 동전주로 전락한 상태다.
◇ 거래소에 사상 첫 상장번복 굴욕 안긴 ‘감마누’
지난 2020년 8월 대법원은 코스닥 상장사 감마누가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 무효 소송에서 감마누의 손을 들어줬다. 그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거래소가 내린 상장폐지 결정이 취소되고 감마누의 매매는 재개됐다.
앞서 감마누는 2018년 3월에 제출한 2017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범위 제한에 따른 ‘의견거절’을 받아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었다.
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은 감마누의 종속회사의 우발채무 문제와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내역이 불분명하다며 의견거절을 냈다. 이에 거래소는 감마누의 거래를 중지하고 기업심사위원회를 열어 개선기간을 준다.
감마누는 이 동안에도 상폐 사유 해소에 실패한다. 이에 거래소는 그해 9월 28일부터 정리매매를 시작했다.
이때 감마누에 반전의 기회가 온다. 감마누 측이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던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정리매매 5일만에 모든 일정이 멈춘다.
결국 감마누는 2019년 1월에야 2017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해 2월 말 거래소를 상대로 상장폐지 결정 무효확인 본안 소송을 제기하고 18개월만에 승소한다.
◇ 안테나 회사가 왜 부실 여행사를 품었나
법원은 감마누가 개선기간을 충분히 주면 상폐사유 해소가 가능한데 거래소가 재량권을 남용해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감사의견 거절은 감마누와 자회사로 있는 여행사들 사이에 오간 거래에 대한 감사증거가 부족했던 것이 처음 감사의견 거절의 이유였다. 해당 여행사는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감마누 측은 나중에 해당 거래에 대한 자료를 추가해 감사보고서 적정을 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따져볼 일이 있다. 안테나 업체 감마누에 여행업을 영위하는 자회사가 여러개나 있는 이유다.
감마누는 지난 2017년 6월 최대주주의 지분을 매각한다. 지분을 매입한 곳은 더블유에스디홀딩스 외 38명이다. 이 계약으로 최대주주가 된 더블유에스디홀딩스는 중국인 우 모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다.
이 계약으로 지분을 받은 곳 중 하나인 에스엠브이라는 곳은 우 씨가 지분을 가진 뉴화청국제여행사와 제이스테판이라는 상장사가 공동 소유한 곳이다. 당시 제이스테판의 대표가 ‘이 씨’다. 사실상 우 대표와 ‘이 씨’가 감마누의 실질적 대주주가 된 것이다.
에스엠브이는 다른 세력들과 규합해 감마누가 최대주주 변경 직후 진행한 유상증자에도 참여하고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사들인다.
이들이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들어간 자금은 총 309억원이다. 하지만 이 자금은 그대로 감마누를 통해 회수된다. 에스엠브이의 자회사에 감마누가 지분투자를 한 것이다.
감마누는 그해 3분기 천계국제여행사, 해피고, 신룡국제여행사, 보라국제여행사, 새한국제여행사 등 여행사 5곳의 지분 각각 51%를 에스엠브이로부터 취득한다. 여기에 들어간 자금은 314억원이다. 우 씨와 이 씨가 감마누를 인수하는데 들어간 자금보다 더 큰 돈을 뽑아냈다. 전형적인 무자본 M&A를 진행한 그림이다..
그리고 이 여행사들의 부실이 감마누의 감사의견 거절 이유가 됐다.
▲이 씨가 지배하던 에스엠브이와 감마누의 무자본M&A 구조. |
◇ 감마누 둘러싼 무자본M&A, 허위사실로 포장한 정황
현행법 상 무자본 M&A 자체는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무자본 M&A 과정에서 수많은 불법적인 행위가 유발된다는 점이다.
감마누는 여행사들을 인수한 뒤 딜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보도자료 배포에 나선다. 내용은 인수한 여행사들이 중국인을 상대로 한 인바운드 영업을 잘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감마누는 "자회사 여행사들의 인바운드 플랫폼을 통한 구매액이 한달간 2650억원으로 월별 실적 최고치를 달성했다"는 등 호실적에 대한 보도자료를 수차례 배포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당시 취재한 결과 해당 여행사들은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해당 여행사들이 합동으로 사용하는 사무실에 방문해 취재한 결과 실제 해당 여행사 직원은 "최근 몇개월간 일이 없다"며 "사드보복으로 한국에 오는 중국인이 줄어든 여파"라고 설명했다.
당시 감마누 측은 해당 취재에 대해 "다른 사업장이 있는데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당시 처음 진행한 회계감사 결과는 실제 이 여행사들의 매출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정정 전 감사보고서는 "2017년 회사가 당기 중에 인수한 면세점 여행사업관련 종속기업들에 대해서 종속기업의 지급보증 및 투자자산의 회수가능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인해 해당 종속기업 투자주식 및 대여금 등에 손상검토 확인을 위한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취재한 사실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감사의견 적정을 받은 정정 감사보고서에도 해당 여행사들이 당시에 돈을 벌었다는 내용은 담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해당 여행사들이 법원을 통해 회생절차를 밟게 됐고, 감마누와 에스엠브이 측에서 오간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투자와 부채관계를 변제와 면제, 무상감자 등을 통해 ‘수습’한다는 것을 전제로 ‘적정’ 의견을 줬다.
◇ ‘작전’에 일격당한 거래소…‘권위’에 큰 상처
법원의 판단과 달리 당시 거래소의 상폐결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상폐사유가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상폐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감마누처럼 시간을 끌면서 적당한 수습책을 내놓아 상장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주식시장은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감마누는 거래 재개 이후 주가가 연일 떨어지는 추세다. 한때 9만원도 넘는 주가가 지금은 600원에서 턱걸이 중이다. 고점 대비 99% 넘게 떨어졌다. 정리매매를 하던 당시의 주가에서 날아오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결국 거래소 입장에서는 증시에 큰 혹을 남긴 셈이다.
한편 감마누의 경영권은 지난해부터 시장에 매물로 나온 상태지만 새로운 주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전주를 거래소가 상폐하려다가 실패했다"며 "감마누의 ‘작전’이 거래소의 권위를 해체해 다른 적법한 상폐마저도 어렵게 한 사태"라고 평가했다.
kh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