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에너지 전문가가 없다] 송전·사용후핵연료 등 처리 시급한 현안, 국회서 줄줄이 막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7.09 13:03

① 국회만 가면 길 잃는 에너지 법안…상임위 계류법안만 200여건 달해

입법논의 허송세월해도 책임 안져…어쩌다 통과되면 졸속·부실 일쑤도

지역이해·당리당략에 의원 전문성 부족까지 겹쳐 사사건건 대립·격돌만

에너지는 이제 정치쟁점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에너지를 두고 진영별로 갈려 절충과 합의가 없다. 논의는 무성한데 겉돌고 있다. 국회에선 생산적이고 균형 잡힌 논의보다는 각 진영을 결속하는 의제에 불과하다. 모든 사안이 마찬가지지만 그런 현상이 에너지에서 유독 심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 대립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주요 배경으로 제대로 된 에너지 전문가들이 국회에 없다는 점이 꼽힌다. 지금의 국회엔 환경 전문가만 있지 진정한 에너지 전문가는 없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뜻이다. 에너지가 국회만 가면 환경문제로 줄줄이 발목 잡혀 산업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다고 에너지업계는 하소연한다. 에너지업계는 에너지가 산업의 핵심이고 이를 보완하는 게 환경인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지는 내년 총선을 10개월 가량 앞두고 원내에 에너지 전문가들이 없어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개선 대안을 기획 시리즈로 마련, 매주 1회 총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회> 국회만 가면 길 잃는 에너지 법안

<2회> 당략·이념에 멍드는 에너지 정책

<3회> 내년 총선 대비 전문가 적극 영입을

<4회> 에너지선진국 스웨덴·호주 사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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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됐다. 연합뉴스



21대  국회 에너지 관련 주요 계류 법안
의안명제안자
송ㆍ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박재호의원 등 10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인선의원 등 21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김영식의원 등 11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김성환의원 등 24인
지능형전력망의  구축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주환의원 등 13인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장동혁의원 등 35인
전기공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류호정의원등10인
전기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강훈식의원 등 11인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김태흠의원 등 10인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박정의원 등 10인
석탄산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성만의원등10인
석탄산업법  일부개정법률안정부
집단에너지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윤한홍의원 등 11인
집단에너지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정부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안황운하의원 등 14인
해저광물자원  개발법 일부개정법률안김병욱의원 등 11인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를 위한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등 15개 법률의 일부개정에 관한 법률안정부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한병도의원 등 12인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전용기의원 등 10인
한국가스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김주영의원 등 12인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송옥주의원 등 10인
출처=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국회엔 시급한 에너지 관련 현안들이 수두룩하다.

재생에너지·석탄화력·원자력 발전 등 출력제어, 사용후핵연료 처리, 탄소중립, 한국전력공사의 적자해소, 에너지·자원 안보 등 하나하나가 국가산업 경쟁력과 국민생활에 직결된 사안이다.

그만큼 정부가 해당 정책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추진하려면 관련 입법의 뒷받침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국회가 정작 이를 정쟁으로만 소모할 뿐 제도적, 법적 뒷받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에너지 관련 법안 200여건 국회 계류…"매번 정쟁화만 되풀이"

9일 기준 21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된 에너지 관련 법안은 무려 200건이 넘는다. 세부적으로는 에너지법·에너지이용합리화 등 제도관련 37건, 재생에너지 32건, 집단에너지 7건, 방사성폐기물 관련 7건, 전기 관련법안 81건, 가스 관련 33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관련 3건, 송·변전 설비 관련 5건, 자원 관련 13건 등이다.

에너지 관련 국회 법안 논의 및 처리 시기는 특히 기약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또 입법과정에서 허송세월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법안이 어쩌다 어렵게 국회를 통과해도 졸속·부실 평가가 뒤따른다.

이런 배경에는 과거부터 국회에 비례대표는 물론 지역구에서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꾸준히 입성하고 있지만 유독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기업 노조 위원장, 환경운동가 출신 의원들은 있지만 전력 시장 운영 등 에너지산업과 정책을 두루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 국회의원 300명 중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한전이 발전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 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려야 했음에도 여야의 네탓 공방 끝에 12월 8일 한차례 부결을 거쳐 28일 새해를 이틀 앞두고 가까스로 통과된 바 있다. 전력시장 붕괴가 코앞인 상황에서 국회의 낮은 이해도와 당리당략에 매몰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송전망 부족 문제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과 국회의 안일한 대응으로 허송세월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여전한 주민 반발, 정부와 국회의 의지 부족, 에너지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여러 이해관계에 막혀 방치되는 모양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여러 현안 중 특히 송전망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22대 국회에서라도 반드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를 골자로 한 에너지정책이 한 발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종영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너지법학자이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 위원장)는 이날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는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국회가 법을 만들고, 법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게끔 행정부 정책을 설계하고 제도 집행을 감시해야 하는데 법률 제정 단계부터 막히니 매 번 정쟁화만 되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 국회의 상임위, 특히 법안소위는 만장일치 중심 관행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아예 넘어가지를 못하는 게 현실이다. 송전망 문제나 사용후핵연료 등은 이념을 초월하고 국민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빨리 해결해줘야 하는데 일부 의원들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다"며 "국가의 근간인 에너지 관련 현안들이 정작 국회에서 막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재차 지적했다.

정치권과 에너지업계는 이런 사태의 원인으로 전문가 부족과 정당 및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꼽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3월 8일 한수원 고리원전본부를 찾아 고리2호기 수명연장, 발전소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관련 절차상, 주민소통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식 의원(국민의힘 구미시을)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가 가시화하고 있는 가운데 작년 9월부터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하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서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 법안 자체가 무산될 위기"라며 "여야가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특별법 제정이 무산될 경우 그 모든 부담은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현재 국회에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에서 오랜 실무 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전무하다. 에너지 현안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정부 입법을 하면서 의원입법 지원을 병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어서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정부 입법 과정은 워낙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최대한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또 빨리 처리 해달라고 하면 일부 의원들은 입법권 침해라고 반발한다. 의원들 개개인과 지역구의 이해관계도 있지만 일정 부분은 에너지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도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 "산업·경제·전문적 논의보다 지역구 이해관계에 매몰돼"

에너지 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부각이 되고 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본질적인 논의가 아닌 지역구의 이해관계 위주로 논의가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상임위 위원들이 해당 분야에 경력이 있어서 오는 게 아니고 번갈아 가면서 상임위를 맡는 관행과 해당 법안의 의의와 필요성보다 지역구의 이해관계와 표심을 우선 계산하는 풍토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도 2021년 7월 최초 발의 됐지만 여야의 이해관계 속 정부가 바뀐 뒤 2023년 5월에야 겨우 통과됐다. 이마저도 당초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했다며 국민의힘에서 반대해오다 추후 국민의힘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해 △소형모듈원전(SMR)의 분산에너지원 포함 △분산에너지설치의무화 △분산전원 특구 등 여러 지역구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뒤 합의를 거쳐 통과됐다.

당시 법안 처리가 차질을 빚은 이유는 법안에 포함된 지역차등요금제로 인해 수도권과 발전소 인근 지역 민심의 충돌이 발행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특별법안 내용을 놓고 수도권과 지방의 이해가 갈리면서 내년 총선을 앞둔 양측 지역 의원들이 대리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애초에 이 법안은 송전설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에너지소비를 분산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법안 통과과정에서는 이러한 필요성보다 지역구별 이해관계 논란이 더욱 불거진 측면이 컸다.

에너지업계에서도 지금처럼 에너지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지역구 우선주의로 흘러 관련 정책이나 법안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을 경우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만큼 전문가의 국회 진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실제 ‘송ㆍ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2020년 9월 발의됐지만 아직도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정부와 한전, 지역 주민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지만 통과되지 못하는 사이 당초 2021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던 동해안-수도권 간 송전망은 아직도 완공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제주도와 동해 송전제약 문제는 곧 전국 송전망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 여름에도 예비율이 7%대까지 떨어졌다. 현재 전국 전력공급설비가 100GW 정도인데 5GW의 송전 제약이 발생하면 예비율이 2%대 이하로 떨어져 바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기가 올 수 있다. 국민들의 불편은 물론 발전사업자들의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전력산업 전반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원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가 지난 15일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공사 추진 ‘동해안∼신가평 500㎸ 직류 장거리 송전망(HVDC) 건설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교수는 "에너지는 환경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되고 산업적,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와 환경은 상당히 오버랩 되는 분야도 있지만 상당히 다른 분야다. 환경관련 법안은 보면 주로 민주당 쪽에서 대부분 주도하고 있다. 국민의힘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관련 정책의 균형 감각이 부족하고 에너지원별 정쟁이 심화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민주당에도 환경분야 전문가분들은 계신데 에너지 업계나 산업 이런 쪽에서 일하셨던 분들은 한 명도 포진을 안 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송전망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회에 에너지 전문가 이런 분들이 비례대표든 지역구든 정당별로 한두 분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법이라든지 제도를 국회의원들이 다 알 수는 없지 않느냐"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들어오면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간에 우리나라가 보다 더 좋은 법을 만들고 제도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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