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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3차 발사를 앞둔 지난 5월23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 누리호 발사대 기립 및 고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연합뉴스 |
우주항공청이 날개를 펴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4월 초 우주항공청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청으로 차관급 우주항공청을 설립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법안을 심의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회의 자체를 열지 못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KBS 시청료 분리 징수,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지명 등을 놓고 여야 간 대화가 꽉 막혔기 때문이다.
과방위가 열려도 우주항공청이 정부 뜻대로 설립될지는 의문이다. 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우주전략본부 설치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따로 추진하고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거야의 벽은 높기만 하다. 우주항공청은 과연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우주에 공들이는 윤 대통령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을 7대 우주강국으로 도약시킨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우주정책 컨트롤타워로 항공우주청 설립을 약속했다. 인수위가 정리한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아예 경상남도 사천에 항공우주청 신설을 추진한다고 못박았다. 사천엔 국가대표급 항공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가 있다.
작년 11월 윤 대통령은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5년 안에 달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발사체의 엔진을 개발하고, 10년 후인 2032년에는 달에 착륙해 자원 채굴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 4월 초 정부는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약에선 항공우주청이라고 했으나 우주항공청으로 이름만 살짝 바꾸었다. 법안은 과기정통부 아래 외청인 우주항공청을 두기로 했다.
법안은 파격적이다. 외국인 또는 복수국적자를 임용할 수 있는 분야를 넓히고, 임기제 공무원의 보수 기준을 예산 범위에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보유해도 해당 주식을 팔거나 신탁하지 않아도 되도록 공직자윤리법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달 중순 윤 대통령은 우주항공청을 언급하며 "일을 잘하면 대통령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게 무슨 대수냐. 기업에서는 훨씬 더 준다"고 말했다. 우주항공청에 국내외 최고 전문가를 초빙하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4월 하순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도 윤 대통령은 우주에 공을 들였다. 윤 대통령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안내로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했다. 이때 과기정통부는 NASA와 ‘우주탐사 및 우주과학 협력을 위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5월 초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가 곧 설립할 예정인 우주항공청(KASA)이 미국 NASA와 공동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이에 따라 첨단 과학기술 인력의 교류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5월 25일엔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가 3차 발사에서 자체 위성을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은 "우리가 우주산업 분야에서 그야말로 G7에 들어갔다는 신호"라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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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8일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대한민국이 우주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2045년까지의 정책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
◇장벽은 여전히 높다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우주항공청 설립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국회 과방위 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지난 4월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가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제출하자 그에 맞대응한 성격이 짙다.
개정안은 기존 국가우주위원회 아래 우주전략본부를 설치해 범부처 우주 관련 정책을 추진하도록 했다. 사실 대통령 직속 우주전략본부 설치는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약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가진 의석수(168석)를 고려하면 우주항공청 신설보다 우주전략본부 설치 가능성이 더 높다.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현행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한다는 내용은 정부안과 조승래 의원안이 동일하다.
7월 초 윤 대통령은 세계 한인과학기술인 대회에서 우주항공청 설립이 늦어지는 데 실망감을 보였다. 그는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우주항공청 설치법이 아직 야당의 협조가 되지를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아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똥은 국회 과방위 장제원 위원장(국민의힘)에게 떨어졌다. 장 위원장은 2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더불어민주당이 8월 내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켜 준다면 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어 "위원장 직권으로 상임위를 정상화하겠다"며 오는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업무보고와 현안질의를 실시하고, 31일 우주항공청 설립에 대한 공청회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의 반응은 얼음처럼 차갑다. 조승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 이어 장(제원) 위원장까지 자리를 걸었다"며 "정치공세를 위해 자꾸 공직을 거는 여당의 황당한 사직 퍼포먼스가 참 한심하다"고 비꼬았다. 이어 장 위원장이 우주항공청 특별법 처리 시한을 8월로 못박은 데 대해 "명백한 국회의 입법권 포기 선언이고, 분명한 국회의원의 입법심사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우주항공청 신설은 동시에 정부조직법을 손질해야 한다. 이 역시 민주당이 태클을 걸면 진척이 어렵다.
경남도와 사천시는 부글부글 끓는다. 국정과제가 여야 정쟁에 발목이 잡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쇠는 국회, 그것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쥐고 있다. 여야 간 협치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우주항공청 설립은 한동안 표류할 공산이 크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정부가 모델로 삼은 미국 NASA의 전신은 NACA, 곧 미 항공자문위원회다. 1915년에 설립된 NACA는 반세기에 걸쳐 미 육군, 해군, 공군과 민간 항공 부문을 지원했다. 그러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가 발생했다. 1957년 10월 소련(현 러시아)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충격에 빠진 미국은 1958년 미 항공우주법 통과를 계기로 독립기구 NASA를 출범시켰다. NASA는 NACA 조직을 대거 흡수했고, 육·해군에 산재된 관련 조직도 통합했다.
명실상부 미국 우주산업의 컨트롤타워로 거듭난 NASA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통해 실력을 과시했고 우주정거장, 행성 탐사, 우주왕복선 사업을 통해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일본은 세계가 인정하는 우주강국이다.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003년 우주과학연구소(ISAS) 등 3개 조직을 통합한 단일체로 출발했다. 2008년 우주기본법 통과를 계기로 JAXA는 내각부 산하 우주개발전략본부(SHSD)의 관할 아래 있다.
1993년 출범한 중국국가항천국(CNSA)은 공업정보화부 산하 기구로 중국 우주산업을 이끄는 주역이다. 2018년 발사된 무인 우주탐사선 창어 4호는 2019년 달 뒷면 분화구에 인류 최초로 착륙했다. 2020년엔 창어 5호가 달의 흙 표본을 싣고 지구로 돌아오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주춤하는 사이 우주굴기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22개 회원국을 둔 유럽우주기구(ESA)는 1975년 출범했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ESA는 국가 간 연합체라는 점에서 개별 국가기구인 NASA, JAXA, CNSA 등과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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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의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센터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협치 모델로 삼자
우주항공청 또는 우주전략본부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우주항공청을 과기부의 외청으로 두고 널리 인재를 모아 보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기민한 조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중국 CNSA가 공업정보화부 아래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한다. 외청을 둘 경우 그 소속을 대통령으로 할지 또는 과기부 장관으로 할지는 또다른 이슈다.
국가우주위원회 아래 우주전략본부를 두는 방안은 범부처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승래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우주개발 정책은 여러 부처와 관련이 있다"며 "우주위원회 산하 별도의 전담기관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JAXA가 내각부 아래 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위원회 산하 조직은 아무래도 기동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외청이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나라마다 가장 적합한 모델을 찾아서 운영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7대 우주강국 도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만나서 대화하면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꽉 막힌 대화 채널이다. 궁극적인 책임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게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계기로 야당과 대화의 문을 트기 바란다. 과방위 위원 20명 가운데 1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국힘은 7명밖에 안 된다. 야당 의원들을 불러 대통령이 직접 설득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당부한다. 의석수를 믿고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모습은 보기에 민망하다. 우주강국 도약이라는 대의에서 보면 외청이냐 전략본부냐는 작은 이견에 불과하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도 국정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내년 봄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 통 큰 양보가 반드시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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