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그룹사 "재생에너지 등 정부 사업 투자…재정 최소 10조 지원"
"2조 규모 전력신산업펀드 조성 재생e 보급 확산·온실가스 감축 등에 써"
"한전공대 지원 등 정책 지출 확대…요금 현실화 미뤄 지금의 상황 초래"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45조원에 달하는 적자에 허덕이면서 업계 안팎에서 2014년 서울 삼성동 당시 본사 부지 매각대금 10조원에 다시금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전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누적 35조 608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본사 매각대금 10조원을 더하면 45조가 넘는 흑자다. 그러나 2018년부터 2023년 1분기까지는 누적 44조 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한전은 국제유가 등 연료비 인상에 따른 소매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앞선 5년 동안 엄청난 누적 흑자가 있었던 만큼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한전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한전이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전그룹사 관계자는 30일 "그 때 10조원의 여유자금이 생기자 전기요금 현실화, 전력시장 선진화 같은 중요한 과제보다는 2조원 규모의 ‘전력신산업펀드’를 조성해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온실가스 감축, 전기요금 복지 등 각종 지원에 소진했다"며 "동시에 탈원전 정책, 국제유가 급등으로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많았지만 이를 반영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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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현재 누적적자 45조와 500%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전의 부채비율은 2013년 202%에서 2016년 143%로 내려갔다. 2014년 한전 부지 매각과 당시 세계적인 저유가 덕분이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 6개와 민간 발전회사가 만든 전기를 사서 가정과 기업에 공급한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이와 연동한 발전 연료비가 내려가고 전력 구매 비용도 줄어든다. 한전은 전기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수익이 증가한다.
2017∼2020년 동안은 국제유가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누적 영업이익 7조 6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을 기록하며 비교적 선방했다.
그러나 2020년 187%였던 부채비율이 지난해 458%를 돌파한 것은 국제유가가 급등했지만 전기요금은 동결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초 배럴당 20달러로 저점을 다진 국제유가는 지금 80달러를 넘나들고 있지만 전기 요금은 인상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제조원가가 올라가는데도 판매 가격을 그대로 둔 것이다.
이로 인해 한전이 전기를 팔아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 투자비 등을 뺀 ‘잉여현금흐름’은 2018년 2조 2756억원에서 지난해 -29조 4419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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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구매의무화(RPS) 이행 비용 정산금은 2017년 1조4631억원, 2018년 2조571억원, 2019년 2조2422억원, 2020년 2조31억원, 2021년 3조4982억원으로 전반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2022년 정산금 산정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한전은 발전사들의 RPS의무이행비용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RPS의무이행비율이 증가할수록 한전의 적자가 증가하고, 따라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탄소감축을 위한 배출권거래비용 정산금도 2017년 813억원에서 2018년 2624억원, 2019년 3388억원, 2020년 1301억원, 2021년 5518억원, 2022년 3409억원으로 증가세다. 여기에 2031년까지 한전공대 설립 및 운영에 들어갈 비용만 총 1조6000억 원으로 책정된 상태다.
삼성동 본사 부지 매각 대금 10조를 벌어들인 게 결과적으로 각종 정책비용, 보조금 지출 대폭 확대와 전기요금 비정상화, 에너지위기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에너지업계에서는 글로벌 경기가 좋고 에너지가격이 안정적일 때나 가능한 각종 보급사업, 복지 정책 등을 여전히 한전에 부담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한전의 에너지공대 지원금을 축소하라고 지시한데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2026년까지 25%로 대폭 상향했던 RPS의무이행비율을 15%로 줄이는 등 각종 보조금 사업들을 축소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전임 정부 때 ‘탈원전 해도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며 5년 내내 요금 인상을 틀어막은 결과, 요금 폭탄의 후폭풍을 후임 정부가 떠안고 있다"며 "탈원전 정책에 따라 태양광 발전 지원 등 부적절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결과 재정건전성이 위협받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매각 대금과 지금의 상황과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전 관계자는 "이익금이 발생할 경우 손실금을 보전한다는 한전법에 따라 대부분 당시 부채 상환에 사용했다"며 "특히 한전공대 설립은 2017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만큼 당시 수익금을 활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전법 14조에 따르면 한전은 이익이 생긴 경우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쳐 이월손실금 보전, 이익준비금 적립, 주주 배당, 사업확장적립금 적립, 배당평균적립금으로 적립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편 에너지업계에서는 한전이 올해 연말 채권발행 한도를 추가로 늘리지 않기 위해서는 4분기에 전기 요금을 최소 킬로와트시(kWh)당 20원 이상은 인상해야 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