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담배 살인’ 파기, 외도 아내 징역 30년 ‘물 한 모금’이 갈랐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7.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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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치사량 담배 성분이 든 음식물을 먹여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2심까지 유죄를 받은 아내의 운명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징역 30년을 뒤집은 핵심 근거는 ‘물 한 모금’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며 "추가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2021년 5월 26∼27일 남편에게 3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 담배 성분이 든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도록 해 남편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남편은 26일 A씨가 건넨 미숫가루·흰죽을 먹고 속 쓰림과 흉통 등을 호소하며 그날 밤 응급실을 다녀왔다. 귀가 후 A씨는 남편에게 재차 찬물을 건넸다. 이를 받아 마신 남편은 1시간∼1시간 30분 뒤 사망했다.

압수된 A씨 소지품 중에는 전자담배 기기와 액상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A씨는 재판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남편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통한 범행 모두 인정했다.

남편이 금연한 지 오래됐고 니코틴 패치를 사용하거나 따로 주사한 흔적이 없는데 부검 결과 위와 혈액 등에서 과량의 성분이 검출된 점이 근거였다.

이후 2심은 미숫가루와 흰죽은 배제하고 찬물을 통한 범행만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형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은 이 찬물 한 컵을 통한 범죄도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부검 결과와 감정 의견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중독이라는 점, 피해자가 응급실을 다녀온 후 과량의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라며 "피고인이 찬물에 해당 성분을 타서 피해자에게 마시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피해자가 성분을 음용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성분을 경구 투여하면 30분∼66분 내 체내 최고 농도에 이르고 이후 빠르게 회복된다. 그러나 남편 휴대전화에서는 최고 농도에 이르렀을 시간대에 암호화폐 시세를 확인한 기록이 발견됐다.

대법원은 또 "A씨가 피해자에게 줬다는 물 컵에는 ⅔이상 물이 남아있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이 준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액 성분이 마실 때 혀를 심하게 자극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몰래 먹이기 어려운 점, 남편이 사망하기 약 두 달 전 A씨의 외도 사실을 알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점도 유죄를 확정하기 어려운 정황으로 꼽았다.

수사 과정에서 남편이 평소 흡연했고 성분 배출용 알약을 차에 뒀다는 진술도 나왔다고 한다.

범행 도구에는 "(피고인에게서) 압수된 제품(액상 담배)에 포함된 성분 함량은 피해자의 음용 추정량과 비교할 때 차이가 상당히 크다"며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살해에 고농도의 원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이 어떤 경로로든 원액을 구매하거나 확보해 준비했다고 볼 만한 정황도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사전에 범행을 준비·계획했다고 볼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범행 동기와 관련해 1·2심은 A씨가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내연 관계로 지내던 남성이 있었고 남편에게 발각되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내연관계 유지 및 경제적 목적이 계획적으로 배우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로 작용했는지에 관해 의문이 있다"고 했다.

남편이 사망해도 A씨가 받을 보험금과 상속재산이 많지 않고 범행 당시 A씨가 살인을 결심할 만큼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 역시 고려됐다.


hg3to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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