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세 결혼 공제, 부자감세 벽 넘을 수 있을까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8.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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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하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세법개정안 관련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신혼부부가 결혼 자금으로 받는 일정한 증여재산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개인별로 1억5000만원, 신부와 신랑이 모두 받으면 3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비판자들은 부자감세, 부의 대물림 논리를 앞세워 맹공을 퍼붓는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저출생 극복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옹호한다.

누가 말이 타당한지, 고령화가 심각한 이웃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선제적 미래 대비"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7일 202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전체적으로 개정안은 법인세, 소득세 등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은 채 미세조정에 그쳤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게 증여세 공제 항목 신설이다.

기재부는 "선제적으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혼인 증여재산 공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성인의 경우 10년 간 5000만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여기에 결혼 전후로 각 2년씩, 곧 4년에 걸쳐 1억원까지 추가로 세금을 면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각자 1억5000만원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양가를 합치면 모두 3억원이다. 증여받은 돈을 어디에 쓰는지는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면 2024년 1월1일 증여분부터 적용된다.

기재부의 논리는 이렇다. 현 공제한도 5000만원은 2014년에 정한 액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는 약 19% 올랐다. 1인당 국민명목총소득은 37% 넘게 늘었다. 집값은 올 6월까지 14.5% 뛰었다. 전세는 6월 기준 전국 평균 2억2000만원, 수도권은 3억원에 달한다. 요컨대 증여세 공제한도를 높여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는 얘기다.

기재부는 해외 사례도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을 비롯해 24개국이 증여세를 운영한다. 캐나다·호주 등 14개 나라는 증여세가 아예 없다. 증여세를 매기는 24개국 가운데 최고세율은 한국(50%)이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반면 자녀에 대한 공제한도를 보면 한국이 벨기에·헝가리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다. 이웃 일본만 해도 결혼자금 용도로 직계존속(부모·조부모)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1000만엔(약 9200만원)까지 공제 혜택을 준다고 기재부는 소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에 대해 "전세자금 마련 등 청년들의 결혼 관련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일 페이스북에 "결혼을 장려해서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특권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국가가 청년 신혼부부에게 해야 할 의무"라고 옹호했다.

◇ 야당은 거센 반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당 회의에서 "정부가 초부자 감세를 또 들고 나왔다"며 "또 초부자 감세냐, 이런 한탄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증여세 정책이) "많은 청년에게 상실감과 소외감을 줄 것"이라며 "기승전 초부자 감세 타령을 이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정교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을 성토했다. 요약하면 증여세 공제 한도 증액의 혜택이 ‘가구자산 상위 13%’에만 집중된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이를 토대로 "결국 혼인 공제 신설은 결혼 지원의 탈을 쓴 부의 대물림 지원 술책"이라고 공격했다. 장 의원은 국회 기재위 소속이다.

부자감세 비판은 여론에 잘 먹힌다. 사실 상속·증여세는 부의 분배를 고르게 하는 목적이 강하다. 그런데 증여세에 이런저런 구멍이 뚫리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부모 잘 만나서 세금 안 내고 큰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청년들이 중시하는 공정 가치와도 충돌한다. 이는 부모찬스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야당이 끝내 반대하면 증여세 결혼 공제는 정부·여당의 제스처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상속증여세법 53조를 개정하려면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같아선 민주당이 OK할 것 같지 않다.

◇ 꼼수가 난무하는 현실

현 청년세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들 중에는 고도성장 붐을 타고 상당한 자산을 모은 이들이 꽤 있다. 자식이 결혼할 때 부모가 전세비를 지원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증여세를 제대로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꼼수로 차용증을 받아두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탈세다.

그러나 징세 당국도 해당자가 재벌이라면 모를까,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다.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 봤자 반발만 부를 뿐 별 이득이 없다고 본다는 얘기다. 장혜영 의원은 ‘가구자산 상위 13%’에만 혜택이 집중된다고 했지만 13%면 꽤 큰 숫자다.

현실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정부가 발표한 증여세 개편안은 널리 퍼진 편법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선책이다.

◇ 한국보다 덜 깐깐한 일본

기재부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부모·조부모로부터 결혼자금 용도로 받은 재산은 1000만엔까지 증여세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주택 취득 자금, 교육 자금에 대해서도 증여 특례를 인정한다.

기본 공제도 한국보다 넉넉한 편이다. 해마다 110만엔까지 공제 혜택을 준다. 매년 110만엔을 10년 간 증여한다면 우리돈 1억원이다. 한국은 10년 간 5000만원까지다.

일본 재무성은 증여세 공제를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한다. 노인대국 일본은 금융자산이 무려 2000조엔(약 1경84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령화 사회는 소비가 위축된다. 돈이 죄다 장롱 또는 우체국 금고에 갇혀 있어서다. 그래서 일본은 사전 증여를 장려한다. 젊은층한테 가야 돈이 돌기 때문이다. 사전 증여한 재산에 대해선 2500만엔까지 세금을 면제한다.

일본과 달리 기재부는 증여세 공제를 저출생 대책 차원에서 접근했다. 좀 아쉽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아예 기본 공제를 높이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일본처럼 해마다 1000만원씩 공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젊은층이 돈을 더 쓰면 경제에 두루 온기가 퍼지지 않을까?

◇ 증여세 손질은 필요하다

증여세 결혼 공제 신설은 실행까지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부자감세, 부모찬스 벽이 높다. 게다가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조원 가까이 줄었다. 결정적으로 입법의 주도권은 야당인 민주당이 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속 고령화 속에 증여세는 손질할 필요가 있다. 출발점은 경제 활성화다. 고령화는 경제에서 활력을 앗아간다. 지난 30년 일본 경제가 반면교사다.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데 도움이 된다면, 야당도 그냥 습관적으로 부자감세 반대만 외칠 일이 아니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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