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기후위기와 위험사회,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8.11 08:00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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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7월 중순의 집중 호우에 이어 긴 폭염과 한반도를 관통하는 제6호 태풍 카눈까지, 대한민국이 호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새만금에서 열렸던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역시 이례적인 기후로 큰 곤욕을 치렀다. 이는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극한 폭염은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 유엔은 급기야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규정지었다. 기후변화는 이미 ‘기후위기’이고, 기후위기는 위험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위험 상황 자체도 문제지만, 현대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복잡성이 그 위험을 더욱 증폭시키는 게 더 큰 문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에 펴낸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산업화와 과학의 발전이 현대사회에 초래한 위험의 특징을 조명했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곤 하는데, 그 시작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파장이 어디까지일지 다 가늠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현대사회가 마주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벡의 지적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현대사회에 초래할 수 있는 피해와 혼란은 쉽사리 예측할 수가 없을 정도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자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 공급이 하루라도 끊긴다면 각종 사무가 마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 서비스, 교통 인프라 등 모든 게 멈춰 서게 된다. 대규모 정전 사태가 길어지면 국가의 안보도 위협받는다. 이토록 중요한 전기의 수급 문제를 생각할 때 ‘적정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산업화 시대의 통념만으로는 이미 대응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에 현대사회의 혈관과 같은 전력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다음을 재점검하며 나아가기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기후위기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후기술(climate technology) 내지 녹색기술(green technology)을 둘러싼 세계 주요국 간 경쟁이 계속되는 이상, 이 분야에서 한국이 도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태양광, 풍력, 차세대 원자로는 물론이고 스마트 그리드와 같은 송배전망의 혁신, 축전지·배터리,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그린 수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기후기술 분야에서 주요국들이 산업·무역 정책 수단을 활용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런 경쟁 속에서 한국이 더욱 전향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특정 기술을 둘러싼 소모적인 정쟁을 멈춰야 한다. 다양한 기후기술들을 서로 경합하고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보는 종합적인 관점과 정책적인 지원이 정부와 정치권에 절실히 요구된다. 종합적인 관점이 있어야만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둘째, 화석연료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려는 데에 사회 전체가 역량을 집중해야만 한다. 한국의 1차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산업의 원료로 쓰이는 부분은 감안하더라도 전력 생산을 위해 소비하는 화석연료 비중(2021년 기준 석탄 34,3%, 가스 29.2%)이 너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의 이유로 화석연료의 공급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결국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해서 공급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기후위기 시대에 마땅히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나 RE100(재생에너지 전기 100%)과 같은 시대적 요구가 국내 기업들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화석연료 화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화력 발전 시설에 기후기술을 접목해 사용하는 것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전기의 사용자인 우리 모두가 절약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전기 사용으로 인해 과도하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그로 인한 재해와 위험도 증폭시킨다. 우리의 편의를 위한 행동이 결국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자각과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벡은 위험사회 극복을 위해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를 요구했다. 근대화로 인한 위험사회에 살게 됐다고 해서 근대성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그 원리와 위험의 성격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과 그 구조적 특징, 그로 인한 혜택과 문제점을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성찰이 요구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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