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수감자 교환에 한국이 왜 나와?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8.13 16:19
IRAN-USA/DETAINEES

미국과 이란은 지난주 수감자 교환 석방에 합의했다. 협상에 따라 양국은 한국 내 은행들에 동결된 이란 자금 60억달러도 해제하기로 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수감자 교환 석방에 합의했다. 각각 5명씩이다. 그 여파로 한국 내 동결된 이란 자금 60억달러(약 8조원)도 해제 절차를 밟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1일(현지시간) "우리는 한국 정부와 이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공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로부터의 송금에 어떤 장애도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이란 간 비밀협상에 제3국인 한국이 주요 변수로 등장한 게 이채롭다.

미국과 이란은 세상이 다 아는 앙숙이다. 두 나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미·이란 비밀협상

지난 6월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작년 12월 뉴욕에서 미국과 이란이 수감자 석방과 핵 협상 재개를 위한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미국 관리들이 중동 오만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비밀협상은 일부 열매를 맺었다. 지난 10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이란에 부당하게 구금된 미국인 5명이 석방돼 가택연금에 들어간 것으로 이란 정부가 확인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란 외무부는 석유 결제 대금 등 동결된 자국 자산에 대해 한국의 은행들이 해제 조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11일 이란 국영 IRNA통신은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이 스위스 은행으로 이체됐다고 보도했다. IRNA는 이 돈이 유로화로 환전된 상태이며 카타르 중앙은행 내 계좌로 송금될 준비가 돼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은 해당 자금을 확실하게 손에 넣은 뒤 미국인 수감자 5명을 석방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지는 송금 절차가 복잡한 탓에 미국인 석방은 9월에나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0일 "미국인 석방을 대가로 풀리는 자금은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사용이 허용된 제한된 계좌로 송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이란계 미국인 시아마크 나마지, 에마드 샤르지 등 5명을 간첩 혐의 등으로 수감 중이다. 나마지는 2015년 이란 출장 중 체포돼 간첩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샤르지는 2018년에 간첩 혐의로 역시 10년형에 처해졌다.

◇ 1981년 알제 협정과 닮은꼴

이란이 ‘인질’을 석방하고 미국이 자산 동결을 푼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날 이란은 미국인 인질 52명을 석방했다. 인질로 잡힌 지 444일만이었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부 부장관이 협상을 주도했다.

그 땐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가 중재자로 나섰다. 이른바 알제 협정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협정은 인질 석방과 함께 "미국이 이란 자산에 대한 동결과 무역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두 나라는 알제리 중앙은행을 통해 동결 자산을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이란 협상에서 동결자금 해제는 핵심 변수 중 하나다. 자금을 주고 받는 통로가 그때는 알제리 중앙은행, 지금은 카타르 중앙은행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 왜 원수가 됐을까

1979년 이란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사이가 아주 좋았다. 팔레비 왕은 친미 노선을 밟았다. 하지만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혁명 세력이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공화국을 세운 뒤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해 11월 호메이니를 추종하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했다. 이때 대사관 직원 등 52명이 인질로 잡혔다. 시위대는 미국에 대해 망명한 팔레비 왕을 송환할 것, 이란 내정에 간섭한 것을 사죄할 것, 동결한 미국 내 이란 자산을 해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0년 봄 ‘독수리 발톱 작전’ 곧 무력에 의한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델타 포스 특공대는 악천후 속에 인질 구출은커녕 대원 8명이 사망하는 손실을 입었다. 호메이니는 "신의 가호로 모래바람이 불어 미국 구출작전이 실패했다"고 큰소리를 쳤다.

1980년 가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는 공화당 소속 레이건에게 완패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인질구출 작전 실패가 최대 패인이 됐다. 결국 미국은 군사력 대신 협상을 통한 인질 구출로 방향을 틀었고, 알제 협정을 통해 52명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으로서 위신은 크게 깎였다.

Iran US

이란에 수감된 미국인 모라드 타바즈의 딸이 2022년 4월13일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주 미국과 이란은 타바즈를 포함해 미국인 수감자 5명을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타바즈는 영국 국적도 갖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 이란 핵 개발 놓고 충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이란 핵무기 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제재 조처를 발표했다. 이른바 포괄적 이란 제재법(CISADA)은 이란에 투자하는 외국 금융사와 기업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오바마는 이를 무기로 이란을 압박했다. 이란은 한 발 물러섰다. 마침내 미국을 비롯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P5)과 독일, 곧 P5+1은 2015년 이란과 핵합의를 맺었다. 공식적으로 이를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CPOA)이라 부른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서 손을 떼는 조건으로 각종 제재를 완화하는 게 핵심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합의 조건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며 반대했다.

◇ 트럼프 핵합의 탈퇴

2018년 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맺은 핵합의에서 탈퇴했다. 이때 미국 보수파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 뒤 미국은 더 센 제재 조처를 잇따라 발표했다.

2018년 가을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나라는 미국과 거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되살아났다.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엔 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6개월 간의 유예기간을 두었고, 유예는 2019년 5월에 종료됐다.

미국은 전세계 기업들을 상대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중국 IT 기업 ZTE, 통신업체 화웨이가 과녁에 올랐다. 화웨이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2018년 1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된 것도 이란 제재 위반과 연관이 있다.

트럼프를 꺾고 2021년 1월에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핵합의를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바이든은 오바마 아래서 부통령을 8년(2009~2017년) 간 지냈다. 지난 6월엔 이라크가 동결된 이란 자금 27억달러를 해제하는 데 동의했다. 이번에 나온 수감자 교환 석방과 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 중간에 낀 한국

한국은 이란과 전통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서울 강남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가 그 증거다. 테헤란로는 1977년 원래 삼릉로에서 이름을 바꿨다. 한국은 이란산 원유 주요 수입국 중 하나다.

하지만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정책을 펴면서 한·이란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과 이란은 원화 결제를 시작했다. 이란은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계좌를 텄다. 이를 통해 이란은 원유 수출대금을 원화로 받았다. 대신 한국은 전자제품 등 수출대금을 이란이 지불하는 원화로 다시 받았다. 미국의 규제망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고 2019년 5월 이란산 원유 수입 길이 막히면서 한국과 이란을 잇던 원화 결제 계좌마저 꽉 막혔다. 덩달아 이란에 주어야 할 원유수입 대금도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계좌에 그대로 묶였다. 그 규모가 많게는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 적게는 60억달러(약 8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바로 이 돈이 미국과 이란 간 수감자 석방 교섭에서 협상카드로 쓰인 것이다. 모하마드레자 파르진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12일 한국에 동결된 자금이 약 70억달러에서 원화 가치 하락으로 거의 10억달러 정도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란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동결자금을 풀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한국은 두 가지 이유로 머뭇거렸다. 먼저 북한 핵 개발에 대한 국제 제재와 형평성 문제가 있다. 한국이 이란 자금을 풀어주면 다른 나라를 상대로 대북 제재 동참을 호소할 명분이 사라진다. 또 하나, 대 이란 제재를 주도하는 우방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2021년 1월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근처 바다를 운항하던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가 약 석 달 만에 풀어주었다. 당시 이란 정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70억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같은 해 9월엔 이란이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중재를 통해 동결 자금을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란은 정식 중재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올해 초엔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해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다.

◇ 동결 해제 이후 과제

동결된 자금은 어차피 우리가 이란에 주어야 할 돈이다. 따라서 미·이란 양국이 수감자 석방 조건으로 동결을 풀기로 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한·이란 관계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다.

다만 줄 돈은 주되 우리가 이란으로부터 받을 돈은 없는지도 함께 따져보아야 한다. 법무법인 율촌의 신동찬 파트너변호사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2023년 8월7일)에서 "한국·이란 간 원화 결제 계좌가 2019년 5월 갑자기 닫히는 바람에 상당수 한국 기업도 이란 측 상대방 바이어 등으로부터 받아야 할 물품 대금 등을 떼인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동결 자금을 내주면 한·이란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시기상조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 합의 재개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다. 공화당의 반발도 변수다. 짐 리시 상원의원은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부당하게 억류된 미국인의 귀국을 환영하지만, 동결된 60억달러의 이란 자금을 해제하는 것은 위험하게 인질극을 더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 이란 강경파는 60억달러 해제를 인질 석방에 대한 ‘몸값’으로 간주한다.

결정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 이란 정책은 언제든 180도 뒤집어 질 수 있다. 사실 이란이 바이든 행정부와 수감자 교환에 적극 나선 것도 ‘트럼프 변수’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으로선 미·이란 핵 복원 협상과 내년 가을 대선을 지켜보면서 당분간 신중히 처신하는 게 상책으로 보인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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