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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진행하는 무기한 단식을 놓고 민주당 인사들이 거듭 ‘해명’에 나서고 있다.
통상 단식은 상대 당에 가장 ‘아픈 포인트’를 최대한 부각하는 ‘최후의 무기’로 꼽히지만, 이 대표 단식은 그간 단식과 크게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특히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주어’, ‘목적어’, ‘장소’ 등 3가지 지점이 꼽힌다.
◇ 주어-‘이재명 리스크’ 임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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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 연합뉴스 |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최재성 전 정무수석은 4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체포동의안 회피용 단식 의혹과 관련해, "1차 (체포동의안) 때는 안 그랬지 않나"라며 "단식으로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계속 굶었어야, 굶어야 된다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 관련 수사가 장기간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단식과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혹은 특히 역대 야당 대표 중 본인 비리 의혹으로 구속이 전망되는 가운데 단식한 사례가 없었기에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달 중 청구가 유력시 되는 이 대표 2차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끝난 지난 2월 체포동의안과 달리 ‘가결’ 전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이미 지난 체포동의안 때도 찬성(139표)은 반대(138표) 보다 많았다. 다만 기권·무효표(20표)로 인해 찬성이 과반을 넘지 못하면서 부결됐다.
과반을 넉넉히 넘기는 의석 수를 가진 민주당에서 비명계 이탈 표가 무더기로 쏟아진 것이다.
당시 친명 그룹은 우선 ‘불체포 특권’ 포기 카드를 내세워 내홍 수습에 돌입했다.
이 대표가 출범시켰던 당 혁신위원회는 ‘불체포 특권’ 포기를 1호 혁신안으로 추진했고, 이 대표 본인 역시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직접 ‘포기 선언’을 했다.
다만 이 대표에 대한 ‘법원 구속 결정’ 전망을 강화하는 사건이 이어진 뒤 친명계 기류는 급반전했다.
‘돈 봉투’ 사건 당사자로 지목된 민주당 출신 윤관석 의원이 지난 달 구속 영장실질 심사에서 검찰 정치 수사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구속된 것이다.
법원이 윤 의원 주장을 받지 않은 결정적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였다.
더욱이 이 대표 관련 ‘쌍방울 그룹 불법 대북송금’ 의혹에서도 핵심 피의자 이화영 경기도 전 평화부지사에 대한 친명계 회유·압박 의혹이 불거졌다.
이 전 부지사가 아내와의 의견 차 등으로 법정에서 파행을 거듭한 가운데 친명계 박찬대 최고위원이 이 전 부지사 아내와 통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박 최고위원이 ‘증거인멸’ 시도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증거인멸 우려’ 자체를 배제하기는 어렵게 됐다.
실제 친명계에서는 지난 달 "표결 불참"(민형배 의원)을 통한 이탈표 단속, 이 대표가 구속됐을 경우에 대비한 "플랜B"(박 최고위원) 등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언급됐다.
결국 비명계가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고, 이를 막을 현실적 수단이 부재하다는 고민이 친명 그룹 사이 파다했던 셈이다.
◇ 목적어-요구는 있고 조건은 없는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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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장 의원 홈페이지 |
이 대표와 친명계는 또 야당으로서의 ‘권력 부재’를 근거로 "어쩔 수 없는 단식"을 주장하고 있다.
김용민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이 대표가) 진짜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는 심정으로 단식을 시작했던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단식으로) 당내의 리더십이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이 대표가 지난 1일 "‘꼭 이렇게 해야 되느냐’ 이런 말씀들이 많았다"며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던 주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친명계는 정부가 이 대표 요구를 수용하는 것과 단식 해제 문제는 별개라며 선을 긋고 있다. 정부가 요구를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일 CBS 라디오에서 이 대표 단식 해제 조건과 관련 "조건을 단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분명히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이 얼마만큼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지 지켜봐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친명계 장경태 최고위원도 같은 날 MBC 라디오에서 "그동안에 단식할 때 ‘어떻게 하면 단식을 해제할 것인가’ 정도로만 생각하시는데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입법권을 보장해 달라는 정도의 기본적인 요구 사항들이 있었던 것"이라며 다소 추상적인 정부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이와 달리 그간 야권 단식에서는 대체로 정부·여당 의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명확한 요구가 이어져왔다.
지난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단식, 2018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촉구 단식,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패스트트랙법안(신속처리안건) 포기 요구 단식 등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저지코자 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 단식도 방류 일정이 공식 결정되기 전이었던 지난 7월이었다.
이때 이재명 대표는 이정미 대표에 "오염수 문제는 방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전"이라며 "건강을 훼손하면 안 되니 장기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단식을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단식 포기를 권유한 바 있다.
◇ 장소-낮에는 야외, 밤에는 실내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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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면이 뚫린 국회 앞 이재명 대표 단식투쟁 천막.연합뉴스 |
이 대표가 낮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단식하고 밤에는 밀폐된 당 대표실에서 단식하는 점 역시 그간 야당 대표들과 다른 지점이다.
일각에서는 당뇨가 지병으로 알려진 이 대표가 당 대표실에서 물과 소금 외 다른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에 "서로 비난하는 유튜버들을 자제시키긴 커녕 흐뭇한 미소로 지켜본다"며 "단식한다고 하는데, 실제 단식인지, 단식 쇼인지도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김용민 의원은 이 대표가 당 대표실로 향한 이유와 관련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 있으면 수많은 당직자와 경호 인력들이 같이 거기 있어야 된다"며 "이재명 대표는 본인이 희생을 각오하겠다는 상황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구심’으로 인해 그간 정부·여당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던 단식의 촉매제 역할도 실종된 상태다.
최재성 전 수석은 그간 사례를 들어 "(상대 당 대표가 단식을 하면) 집권당이나 집권 세력이 가서 위무를 하고 또 협상을 시도하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라며 "책임지라는 의미의 집권 세력의 모습과 태도는 그래서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게 완전히 실종돼 더 우려스럽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hg3to8@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