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전문인력 지정제' 취지 제대로 살리려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9.07 09:03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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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정부가 지난달 첨단전략기술 보호 강화 방안을 내놨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기업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첨단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전문 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골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 제도가 법의 취지에 맞춰 제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은 이를 근거로 해당 전문인력과 해외 동종 업종으로의 이직 제한, 전략기술 관련 비밀유출 방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전략기술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기업이 정부에 해당 전문 인력의 출입국 정보 제공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잘 운용한다면 ‘산업스파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상 ‘전문 인력 지정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김성원 의원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 간첩죄 적용 등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산업스파이 철퇴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 양향자 의원은 기존의 특허법원을 ‘기술특허법원’으로 확대 개편해 지재권 분쟁 소송 전문성 확보를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기술보호법ㆍ첨단산업법 개정안 등 ‘기술탈취방지 3법’ 발의를 예고했다. 이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잘 조율하고 세밀하게 연구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추가해 법률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업스파이가 준동하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이 한 몫 했다. 산업기술보호법 제36조는 산업기술을 유출한 자는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는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서 3년 반, 그마저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산업스파이에 대한 무죄 선고율이 20%에 달한다. 최저 형량을 지금보다 크게 높이고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되도록 법률을 뜯어 고쳐야 한다.

산업스파이에 대해서는 ‘산업기술보호법’과 함께 형법 제98조의 ‘간첩죄’ 범위에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포함시켜 간첩죄로 다스려야 한다. 전 산업 분야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산업 기술이 국가안보와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군사기밀 유출행위만을 간첩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에 동떨어진 제도다. 외국으로의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 미국은 산업스파이를 ‘간첩죄’로 가중처벌하고 있고 일본은 공급망 강화, 기간산업 물자 확보,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산업스파이가 노리는 것은 결국 돈이다. 첨단기술 전문 인력 지정제 역시 전문 인력으로 지정만하고,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만을 강요해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이 협력해 전문인력을 최고의 기술 전문가에 걸맞은 합당한 명예와 처우를 약속하고 실행할 때 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기업은 성과보수체계를 바꿔 그들의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국가는 전문 인력의 퇴직 후 생활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퇴직 엔지니어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주는 등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 학술원’이라는 곳이 있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면 종신임기를 누린다. 정회원은 매달 180만 원의 회원수당을 지원받고, 회당 10만 원의 회의 참석수당도 받는다. 연구 논문을 쓰면 연 1000만원 정도의 학술 연구비를 지급받는다. 정회원은 대부분 교수들이어서 기본적으로 은퇴 후 수당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으며, 위에서 말한 회원 수당은 별도다. 첨단기술 인력을 학술원 회원에 준해 대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 인력은 학술원 회원 못지않은 중요한 인재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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