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지분·권력 집중적 제도·온라인 등 극단 요인 다양
욕설문자부터 살해협박까지…팬덤정치 부작용 잇따라
"정치참여 확대 등 긍정기능 넓히기 위해 문화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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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이 장시간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이 영장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팬덤정치’는 정치권 안팎에서 딜레마처럼 여겨져 왔다. 정치 참여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선을 넘는 순간 특정 정치인을 향한 지나친 팬심이 타 정치인과 타 정치집단에 대한 혐오로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20년 전 등장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팬덤정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진영을 불구하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기 위한 팬덤이 형성돼왔다.
다만 과거의 팬덤정치가 여론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반면 최근에는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로 불리는 강성 지지자들이 욕설문자와 살해협박 등 극단적인 지지활동을 벌이면서 오히려 여론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3일 "팬덤정치가 정치 참여를 활발하게 하고 넓히는 데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과 다른 정치 색을 띄면 혐오와 적대감으로 바라보는 등 극단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팬덤 정치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요인으로 정치적 지분으로 바뀐 팬심, 특정 선출직에 권력이 집중되는 제도적 한계, 온라인의 발전 속도 등을 꼽았다.
또 과거 공격이 아닌 응원의 문화로 자리잡아야 하고 팬덤리더인 정치인이 팬덤정치를 놓을 수 있을 때 건강한 팬덤정치가 실현된다고 꼬집었다.
◇ 정치적 지분·권력 집중적 제도·온라인 등 극단 팬덤 요인 다양
과거 정치인을 향해 ‘아이돌 팬심’에 그쳤던 팬덤이 최근 ‘정치적 지분’으로 바뀌면서 강성 지지층이 형성된 점도 극단적인 팬덤정치를 형성하는 배경으로 작용됐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는 "최근 강성 지지자들은 정치인이 주요직에 오른데에는 지지층에도 정치적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과거 ‘바보 노무현’을 외치며 노란 풍선을 들고 나타난 지지자들은 마치 아이돌 팬클럽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형성된 정치인 응원모임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며 "그 이후로 비슷한 팬덤이 형성되고 규모가 커지다 보니 지지자들끼리도 서로 견제하고 다투는 양상이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지지자들이 팬심에 그쳤던 마음을 최근에는 정치적 지분으로 이해하면서 본인들이 지지하는 후보들이 당선되지 못하는 불만을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현하는 등 사회적 병리현상처럼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체제로 이어지는 제도적 한계도 팬덤 정치를 극단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혔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공론센터) 소장은 "팬덤 정치는 특정 정치인을 응원하는 치어리더의 역할에서 끝나야 하는데 공격수 역할을 자처하면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제도를 개선하면 팬덤 정치도 긍정화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현재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대권을 잡으면 승리하고 아니면 패배한다는 식의 패권싸움으로 접근한다"며 "이렇다보니 강성 지지층들도 누구 하나가 정치적으로 입지가 사라져야 끝나는 싸움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내각제 혹은 다당제를 구현해야 극단적인 팬덤 정치문화가 희석되는데 현재의 대통령제와 중대선거구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치 언쟁에 화력이 붙는 데에도 가속되고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요즘 팬덤 활동에 온라인이 주로 사용되다 보니 지지자들 사이의 논쟁이 과거보다 과열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과거에도 집회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온라인으로 전달되는 속도보다 한계가 있었다"며 "지금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언쟁을 주고 받는 상황이다 보니 언어도 센 표현을 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고 치열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말싸움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다 보면 실제 물리적 충돌까지 연결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욕설문자부터 살해협박까지…최근 팬덤정치 부작용 잇따라
최근에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들의 행동들이 정치권 도마에 올랐다. 이 대표가 단식부터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까지의 과정을 겪는 약 3주 동안 강성 지지자들은 흉기 난동과 욕설문자, 살해협박 등 극단적인 지지 활동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31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이후 단식 24일째인 9월 23일 단식을 중단했다.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지지자들도 과격해졌다. 강성 지지층들은 이 대표의 단식이 9일째 이어졌던 지난달 7일 국회 소통관 앞에서 열린 ‘방글라데시-네팔 어린이와 함께하는 네팔 바자회’에 몰려들어 "이 대표가 단식중인데 먹을 것을 파느냐"며 항의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이 대표 지지자로 추정되는 한 50대 여성 김 씨가 단식 농성장에서 흉기를 휘두르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를 제지하던 경찰관 두 명은 몸싸움을 벌이던 중 각각 왼쪽 손등과 오른쪽 팔에 상해를 입었다.
이 대표 단식 16일째인 지난달 15일에는 민주당 당 대표실 앞에서 이 대표 지지자로 추정되는 70대 노인 김 씨가 자해 소동을 벌였다. 김 씨가 커터칼로 자신의 팔목을 그으려했고 이를 막던 국회 당직자는 팔목에 상처를 입었다.
강성 지지자들의 임계점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던 지난달 21일 넘어섰다.
강성 지지자들은 강제로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차벽으로 이들은 제지했고 5번 출구를 제외한 국회의사당역 출구를 일시적으로 폐쇄하기도 했다.
이틀 뒤인 지난달 23일에는 40대 남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명계 의원 14명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라이플(소총)을 준비해야겠다"며 살해를 암시하는 글을 올려 경찰에 붙잡혔다.
비명계인 중진 이상민 의원은 응원을 가장한 욕설 문자를 받았다. 지난달 2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에 따르면 이 의원은 ‘이상민님 응원해요/ 개딸은 무시해요/ 새로 창당해도/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야권의 희망이십니다’라는 문자를 강성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에게 받았다. 이는 각 행의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욕설이 되는 문자였다.
◇ 전문가들 "정치참여 확대 등 긍정기능 넓히기 위해 문화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팬덤정치가 정치 참여를 넓힌다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건전한 비판이 허용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건강한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이종훈 평론가는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되는 거에 비해서는 오히려 정치적 관심층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게 과열로 치달아서 물리적 충돌까지 이어진다면 준전시 혹은 준내전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평론가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막으려고 국회가 있는 것인데 건강한 비판이 아닌 지지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된다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철현 교수는 "정치적인 관심을 끄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건 맞다"며 "팬덤정치의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극단적인 팬덤정치는 정치 참여도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정치를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오히려 합리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표현을 자제하는 현상도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팬덤정치가 극단적인 분위기로 흘러가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팬덤리더인 정치인들이 팬덤정치를 내려 놓을 용기도 필요하다고 꼽혔다.
장성철 소장은 "팬덤정치에 기생하는 정치인들이 선동하는 부분도 있다"며 "정치권이 대화, 타협, 조정을 통해 상호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또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했다고 이해를 하니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감까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claudia@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