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규제 개혁] 미국, 독립기관이 양방향 의사소통 거쳐 요금 결정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1.12 14:24

미국, 법률적으로 규제기관의 의사결정 독립성 보장

에너지사업자 비용 보장&소비자 효용 극대화 동시 추구

"정부의 역할은 일방적 통제 아닌 기업 활동 보장, 고객의 선택 폭 넓혀주는 것"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심화로 인해 전기요금 현실화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현 전기요금 결정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로 ‘에너지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 강화’,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 구축’을 내세웠다.

현재 전기위원회 중심의 전력산업 규제체계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기위원회가 산업부 내 행정조직으로 심의기구에 불과해 전기요금이 재무적 근거가 보다는 정책적,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실정이다. 비전문적 의사결정으로 인한 전기요금의 왜곡은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초래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의 시장진입도 저해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선진국들은 정치권과 분리된 독립적인 에너지시장, 요금 규제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위원들도 각 분야 (전력/가스 산업, 경제학, 소비자 정책, 재무 및 투자 등)에서 상당한 경험을 보유한 인력에서 선발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국내 전기요금 결정구조의 실태를 알리고 해외사례에서 해법을 찾고자 ‘에너지 규제 거버넌스, 글로벌 스탠다드 따라가자’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모았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국내 실태·대책

② 해외사례-영국·프랑스

③ 해외사례-미국

④ 해외사례-일본



[에너지경제신문/캘리포니아(미국)=전지성 기자]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지난 8일 4분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발표 브리핑에서 "어려운 상황임에도 4분기 요금 인상을 허가해 준 당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는 유틸리티회사 사장이 요금 조정을 할 때 정당에 이같은 멘트를 하는 일은 없다. 캘리포니아 공공사업위원회(CPUC)에서 독립적으로 요금이 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법률적으로 규제기관의 의사결정 독립성 보장

캘리포니아 공공사업위원회(California Pulic Utilities Commission, CPUC)의 에너지어드바이저 닉 달버그는 "CPUC는 요금체계를 변경할 때 수백명의 전문가들이 3∼4년 동안 지역사회의 사업자들과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다"며 "주정부가 CPUC에 요금 통제 권한을 준 이유는 사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전력공급을 하고 소비자들도 필요할 때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다. 대신 규제기관은 임무를 충실히 할 경우 그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주지사가 임명한 5명의 위원과 우리 직원은 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유틸리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사기로부터 보호하며 캘리포니아 경제의 건전성을 증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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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C가 에너지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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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C가 전기요금 관련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전기와 가스는 소비자들이 언제든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또 사업자들도 사업을 지속하려면 비용이 제대로 회수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자들은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사업자들의 비용을 보장하는 것은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라 안정적 전력공급을 달성하기 위함"이라며 "전기요금 산정의 기본은 전력회사의 수익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시장 유지다. 요금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전력시장이 무너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물가상승보다 훨씬 큰 타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CPUC는 대중에게 봉사한다는 임무의 일환으로, 그리고 주법에서 요구하는 대로 주지사와 주의회에 매년 전기 안전 및 신뢰성 부문(ESRB), 가스 안전 및 신뢰성 부문(GSRB) 사고 보고서, 에너지, 통신 등에 관한 기타 보고서를 제출하고 공개한다"고 말했다.

CPUC의 에너지 부서(Energy Division)는 전기, 천연 가스, 증기 및 석유 파이프라인 회사 등 4가지 유형의 투자자 소유 유틸리티(IOU)에 대한 규제를 담당한다. 공익을 위해 에너지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관리하고, 위원회에 조언하며, 기업들이 위원회의 결정과 법적 명령을 준수하도록 보장한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을 위해 합리적인 최저 가격으로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며 환경적으로 건전한 에너지 서비스를 촉진하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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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C 조직도.

미국은 법률적으로 CPUC의 의사결정과 규제행위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공익사업법에 따라 ‘PUC 규제는 주 헌법에 상반되거나 충돌되는 조항이 있어도 그것보다 우선한다’고 규정돼 있다.

규제기관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주 법원에서만 번복 또는 재심의가 가능하다.

또한 PUC내에 100명 이상의 전문인력을 보유해 전문적인 규제 행위가 가능하다. 의사결정 방식 또한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시행하며 이해관계자에게 충분한 의견 제시 기회를 부여하며 위원장이나 일부 위원 중심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

규제기관이 자유요금제를 제외한 모든 소매요금과 배전망 요금을 감독하며 회사별로 적정한 매출금액 결정(Revenue Requirements)하고 고객 용도별로 원가 배분 기준을 결정한다. 이는 고객에게 적절한 가격 신호를 제공하는 동시에 허용된 매출금액을 달성할 수 있는 요금 설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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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C 직원들이 공청회장에서 주민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CPUC는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함께 다음과 같은 10가지의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 산정 원칙을 지키고 있다.

1. 저소득층 및 의료 수준이 낮은 고객은 적정한 비용으로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2. 요금은 한계비용에 근거해야 한다.

3. 요금은 비용-원인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4. 요금은 절약과 에너지 효율을 권장해야 한다.

5. 요금은 동시 피크 수요와 비우발 피크 수요 모두를 감소시키도록 권장해야 한다.

6. 요금은 안정적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고객의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7. 교차보조금이 명시적인 국가 정책 목표를 적절하게 지원하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교차보조금을 피해야 한다.

8. 인센티브는 명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9. 요금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장려해야 한다.

10. 새로운 요금 구조로의 전환은 고객의 교육과 새로운 요금에 대한 고객의 이해와 수용을 향상시키고, 그러한 전환과 관련된 요금 영향을 최소화하고 적절하게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 규제 독립·민영화, 단점보다 장점 많아…소비자들이 현명하게 대응할 것"

한국은 물론 미국의 전문가들도 한국의 에너지 규제 체계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에너지시장 확립, 에너지 효율향상, 전력회사의 일부 민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조셉킴(Joseph Kim)한미에너지협회(KAEA) 이사는 "한국은 독립적인 에너지규제 기관이나 전력회사의 민영화에 대해 부작용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같은 시스템의 빛이 어둠보다 훨씬 크다. 민영화를 하면 무조건 요금이 올라간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것은 소비자들의 집단지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다양한 에너지기업들의 사업 컨설팅, 에너지기업 운영 경험과 십 수년 째 미국에 거주하며 겪은 일들을 토대로 한국의 에너지규제 체계와 전력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진단했다. 김 이사는 KAIST 경영공학과 석사,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세계 3대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Bain & Ciompany) 한국 컨설턴트(Korea Consultant), 한국 별정 사업자 협의회 2대 회장을 지냈다. 지난 2018년 설립된 한미에너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에너릿지(Eneridge), 게너스에어(Ghenus Air) CEO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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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킴(Joseph Kim)한미에너지협회 이사가 에너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도 민영화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PUC가 있다. 이곳은 정부의 역할이 독점을 통해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우리나라는 고객한테 선택권을 안 주고 있지 않느냐. 고객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규제기관이 독립하거나 민영화를 해도 국민들이 이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본다. 부당하게 요금을 높게 책정하면 시위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고, 민간 기업들에 불매운동도 전개하는 등 나름 대응을 할텐데 우리는 무작정 정부가 나서서 사전에 통제하려고 하니 항상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정부가 나서서 저렴하게 요금을 통제하니 에너지 사용 효율화도 안되고 요금을 컨설팅 해주는 업체들도 성장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미국의 전기회사들은 글로벌 에너지가격 변동 등 인상요인이 발생할 경우 요금을 올리는 대신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기술들을 무료로 제공한다. 대부분 가정에 스마트미터가 보급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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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정용 전기요금 고지서. 조셉킴 한미에너지협회 이사 제공. 여름철과 겨울철, 시간대별 세부요금 내역이 상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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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정용 전기요금 고지서. 조셉킴 한미에너지협회 이사 제공. 여름철과 겨울철, 시간대별 세부요금 내역이 상세히 나와 있다.

김 이사는 "예를 들어 가정의 에너지 소비 비중에서 제일 큰 부분이 냉난방이라고 하면 이 부분의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요금은 올랐지만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켜 비용부담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게끔 해준다. 또한 미국은 발전회사들이 에너지 효율을 위한 발전기금을 내게 돼 있다. 그런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전부 다 정부 주도이기 때문에 한전의 적자가 이만큼 커진 것 같다. 물론 미국이라고 모든 체계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부의 통제가 아니라도 견제와 균형 속에서 사업자와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CPUC위원은 선출된 주지사가 임명을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임 주지사가 공화당이었다면 5명 중 3명이 공화당원이고 나머지 임기가 끝나는 두 사람이 있으면 민주당 출신 주지사가 임명을 한다. 그러면 공화당 셋, 민주당 둘 이런 식으로 구성이 된다. 또 위원들 말고도 위원들을 서포트하는 전문 조직이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전력시장이 민영화가 된다고 기업들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규제 위원회에서 일부 통제를 하고, 민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견제가 나온다. 그럼 정부도 그만큼의 인력을 더 건설적인 곳으로 쓸 수 있다"며 "미국은 전력시장이 상대적으로 민영화가 됐지만 기업들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시민들이 민원, 고소 등 여러 가지 압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한국처럼 공공이 통제하는 상태에서는 이런 생태계가 형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위원 5명, 행정직원이 5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전기요금이나 규제, 인허가 결정권이 없는 사실상 행정기구에 불과하다.

전기위원회 한 관계자는 "한국은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의사결정의 독립성은 전무하다. 이번 4분기 전기요금 인상 과정에서도 한국전력공사 이사회가 8일 오전에 이사회에서 요금 인상안을 상정하자 즉시 위원회를 개최해 의결했고 그날 오후 공식 발표됐다"며 "정치권, 정부에서 다 정한 안건에 사인만 하고 만다. 우리도 이제는 해외 선진국들과 같이 상시적으로 합리적·효율적 정책을 만들고 심의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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