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자제·슈링크플레이션 대책 고강도 단속에
업계 "영업이익 증가는 해외매출 늘어난 결과"
유통사 정책 동참하지만 구조난맥상 효과반감
"제조유통에 책임전가, 유통 전단계 정책 필요"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유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조하니 기자 |
지난해부터 국제 곡물가 급등에 따른 원재료 비용 부담 증가를 반영하기 위해 주요 식음료사들이 차례로 가격 인상을 단행한데다, 외식 중심의 음식점 메뉴 가격도 계속 상승해 고물가 기조를 이어가자 정부가 물가관리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일부 품목의 가격 인상 자제에 대응해 일부 식품사가 가격은 유지하되 상품 용량을 줄여 정부의 고물가 단속 효과를 희석시키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감량+inflation·물가상승 합성어)이 등장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슈링크플레이션’ 규제 정책을 12월에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식품·유통사들은 업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부의 물가정책 방향에 볼멘소리를 내면서, 물가상승의 구조적 문제점인 복잡한 유통단계 문제를 외면한 근시안적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물가관리가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을 지도 미지수라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꼼수 인상 규제…업계 ‘고물가 주범’ 낙인에 볼맨소리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식품업계 위주로 가격을 기존대로 유지하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등 편법 인상마저 성행하자 정부가 물가 관리 고삐를 조이고 있다. 이달 말까지 73개 품목 209개 가공식품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23일부터 소비자 신고센터도 운영하며 제보를 접수받는 등 전방위 압박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현행법상 기업이 용량을 줄여 이윤 창출 방식으로 활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슈링크플레이션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재하면서 이번 조치도 정부의 권고 수준에 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집중 표적이 된 식품업계는 향후 정부의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과도한 기업 때리기"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3분기 깜짝 실적을 이유로 식품업계가 고물가 주범으로 몰리는 상황에는 업계 상황을 도외시한 처사라는 반응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해태제과와 빙그레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247%, 154% 급증했다. 농심·삼양식품·오뚜기 등 라면 빅3 제조사도 80~120% 이상 영업이익이 늘었으며, 종합식품기업인 대상과 풀무원도 50% 이상 영업이익이 개선됐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영업이익은 줄었으나 식품 부문만 보면 12% 신장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내외 원부자재 값이 안정세인데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물가규제 근거로 제시하지만, 업계는 원부자재를 몇 개월 앞서 미리 수급하는 특성상 아직 원가인하 요인은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고 반박하고 있다. 올 들어 주요 원료인 팜유·밀가루 등의 국제시세가 안정세를 띠고 있지만, 미리 재료를 수급하는 식품업계 특성상 국내 제조원가에 적용되는 시차가 있다는 설명이다.
식품업체 한 관계자는 "매출원가에서 원부자재 비중이 70∼80% 이상에 육박하는 식품업체 특성상 원가가 오르면 상승분만큼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다만, 정부의 가격 억제 탓에 눈치보기식 인상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소비자 체감이 덜 한 용량 줄이기로 방법을 선회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도 "여론에서 호실적 배경으로 가격 인상을 꼬집고 있으나, 내수보다 마진(이윤)이 좋은 해외시장에서 매출이 커진 영향이 크다"면서 "당장에 가격 조정을 보류하더라도 참아온 만큼 한 번에 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가 안정을 위해 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통 구조 고려한 구조적 문제 해결 필요"
정부의 물가 안정 요청과 함께 주요 대형 유통사들의 고충도 늘고 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명분으로 소비자 저항을 고려한 가격 경쟁을 이어가면서 수익성이 떨어진 것이다.
실제로 유통 3사로 꼽히는 ‘이마롯쿠(이마트·롯데쇼핑·쿠팡)’ 모두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해당 기간 쿠팡 영업이익은 41%, 이마트는 22% 가량 줄었다. 롯데쇼핑도 1420억원으로 5.3% 떨어졌다.
대형 유통사들이 물가 안정화에 힘을 싣고 있지만 현 유통구조 상 한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조사와 대형 유통업체 외에도 도매상과 중간 유통업자 등을 거칠 때마다 추가로 마진이 붙는데다, 심하면 담합 등을 통해 부당 이익을 취하는 경우도 잦기 때문이다. 이에 소매 시장에 풀리기까지 전 유통 구조를 아우르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매 가격은 제조업체 납품가와 유통업체 마진 외 중간 홀세일러분 등 유통 과정에 간여하는 당사자들의 몫이 합쳐진 최종 복합물"이라며 "한쪽만 압박하면 그만큼 나머지 업계로 가격 부담이 전가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이를 소비자가 감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11년 만에 부활한 물가안정책임제에 대해 ‘정책 엇박자’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품목별 담당자를 지정했던 물가관리책임실명제와 유사한 것이다.
이달 들어 농림축산식품부는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배추, 사과 등 농축산물 14개 품목, 햄버거 등 외식 메뉴 5개 품목, 라면, 우유 등 가공식품 9개 품목 가격을 매일 확인하기로 했다. 빵과 우유 등 가공식품 9개 품목은 별도 담당자를 지정해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서용구 교수는 "품목별로 용량 당 가격을 결정하려는 방식의 정부의 직접적 통제도 부작용이 많을 것으로 예상 된다"면서 "원유·밀가루 등 원자재 값을 최대한 안정화시키면서 소비자 감시 등 간접적 수단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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