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로 이어지는 에너지 요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2.10 12:17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김소희
지난달 초 대기업과 중견기업용 전기요금만 ㎾h(킬로와트시)당 10.6원 올랐다. 가정용과 식당·상점 등 소상공인용, 중소기업용은 동결하였다. 10여년전 이라면 잘한 결정이라 칭찬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누적된 적자와 미수금 뉴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일반 기업이었으면 벌써 부도가 났을 상황인데 정부가 세금으로 망하지는 않게 하겠지. 지금 세대가 나눠서 감당하지 않으면 쌓인 빚은 고스란히 다음세대로 부담이 전가될 수 밖에 없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결정에 누가 동의를 했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물가와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했다는 정부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파리협약이 제시한 지구평균기온 1.5도를 제한하려면 글로벌이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올해 나온 미국의 제5차 국가기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태어난 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보다 기후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 세대 간 기후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언급한다. IPCC 6차 보고서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얼마나 더 덥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지는 현재와 단기 미래에 우리가 하는 선택에 달려 있다고 전한다. 지금 당장 효과적이고 공평한 기후행동을 주류화하면 자연과 인류의 손실과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실행가능하고 효과적인 방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메세지다. 그리고 효과적인 기후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정치적 책임을 첫 번째로 꼽는다.

원료비에 연동되어 결정되는 에너지 요금 결정 구조는 깨어진지 오래다.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 유지를 위해 동결된 에너지 요금은 이번 정부 물가 안정으로 이어지며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에너지 공기업을 상대로 자구책 마련과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시민들 눈높이에서 지극히 옳다. 그간 한국전력공사가 정부에 기대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에너지 신산업 발전에 발목을 잡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권은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에너지 요금의 인상도 결정했어야 한다. 기후우울증까지 겪는 미래세대에 정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글로벌 선진국들이 기후대응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며 새로운 일자리에 투자하고 있고, 이러한 움직임에는 탄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 있다. 현 세대로부터 합당한 에너지 요금을 걷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저탄소 산업에 투자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실현가능한’ 약속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하는데 국민들의 에너지에 대한 위기감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국내에너지기구 21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인 에너지 원단위도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35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에너지 원단위는 에너지효율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되는데, 에너지 원단위가 높다는 것은 단위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에너지를 더 많이 쓴다는 의미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마치 산유국처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마구 쓰는 나라다. 이렇게 된 주된 요인은 정치적 이유로 오랜 기간 인상을 눌러 온 전기요금 때문이다. 낮은 전기요금은 기업들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투자를 유인하지 못했다.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여름 냉방에 실내에서 긴팔을 걸치고, 한겨울 내복대신 과도한 난방으로 집안에서 반팔을 입는다. 상점에서 호객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문 열고 냉방을 하고, 시내의 랜드마크 건물의 조명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기후대응은 전 국민의 동참없이는 어렵다 누구나 얘기하고 있지만, ‘에너지를 마음껏 쓰세요’라고 말하는 전기요금으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월 청년들의 모임인 ‘클리마투스 컬리지’는 에너지 요금 정상화를 위해 2030세대 1000여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기획재정부 장관 앞으로 의견서 전달한 바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원료비에 따른 전기, 가스 요금을 책정해 기업과 소비자가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내 기후행동의 시작은 에너지 요금 정상화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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