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로 본 식품
싸고 용량 많아야 인기…가격인상엔 정부·국민 손사럐
제과·유업계, 초저출산 여파 사업 다각화로 활로 모색
제로슈거 열풍 지속, 라면·김치 한류 힘입어 해외확장
▲10월부터 스타벅스 매장에서 상시 판매중인 887㎖ 대용량 트렌타 사이즈 음료. 사진=스타벅스코리아 |
[에너지경제신문 조하니 기자] 고물가와 얼어붙은 소비심리 속에서 기업마다 살아남기 위한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한 해였다. 가성비 상품을 찾는 불황형 소비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눈치보기식 가격 인상에 나섰고, 너나할 것 없이 먹태 과자, 제로슈거(Zero Sugar) 등의 트렌드에 편승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시장을 노린 글로벌 업체들의 진출이 잇따른 한편, 반대로 포화된 내수 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을 돌파구 삼은 국내업체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올해 식품업계에서 화두가 됐던 다양한 주제를 △가성비 △탈(脫)한우물 △제로슈거 열풍 △글로벌 프랜차이즈 격전지 △K-푸드 등 주요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
2023 결산 식품 키워드 | |
가성비 | 먹거리 인상에 가성비 제품 주목…꼼수 인상 비판 |
탈(脫)한우물 | 저출산 여파에 유·제과업계 신사업 육성 및 핵심 타겟 변경 |
제로슈거 열풍 | 건강 관리 트렌드 초점 맞춰 무가당 소주 등 성분 덜어내기 |
글로벌 프랜차이즈 격전지’ | 강남 위주로 커피·치킨·햄버거 북미 프랜차이즈 잇따른 진출 |
K-푸드 | 포화 상태 내수 시장 벗어나 해외 시장 확대 속도 |
코로나19에 따른 보복소비 형태로 주목받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트렌드가 사그라지면서 다시 가성비로 전환된 추세다. 연초부터 빵과 과자, 우유, 아이스크림, 치킨, 햄버거, 주류 등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서 보다 저렴한 제품에 손이 가는 것이다.
출시 6일 만에 5만개 판매고를 기록한 신세계푸드의 2900원 짜리 ‘짜장버거’, 출시 75일 만에 판매량 150만 잔을 넘어 상시 판매로 전환된 스타벅스 코리아의 ‘트렌타(887㎖)’ 음료 등 가성비 제품이 사랑을 받았다.
가성비를 따지는 알뜰 소비가 확산되자 원가 부담 등을 이유로 가격 조정에 나선 식품사들에 사회적 지탄도 뒤따랐다. 가격을 올리지 않되 양을 줄이는 ‘슈링크 플레이션’ 등 꼼수인상 수법마저 등장하자 소비자 반감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정부가 품목별 담당사무관을 지정하는 등 물가 통제를 강화하면서 풀무원·오뚜기·롯데웰푸드 등 일부 식품사들은 인상 철회에 나서기도 했다. 단속 수위가 높아지면서 일각에선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물가 안정을 위한 고강도 조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올해는 고물가 이슈가 식품업계를 불편하게 만든 한 해였다.
◇ Keyword #2. 탈(脫)한우물
올해 또다른 식품업계 특징은 한우물만 파면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제과 및 유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평균 출생아 수가 0.7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 여파로 영유아 인구가 줄면서 업계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에 신규 사업 육성을 통한 새 먹거리 확보에 공들이는 모습이다.
매일유업은 건강기능식품·식이요법식품 관련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해 노년층 대상 실버푸드 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며, 신사업으로 디저트를 낙점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올 초 기존 디저트브랜드팀을 디저트마케팅팀으로 개편해 크림하프롤·크림도넛을 선보이는 등 베이커리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남양유업 역시 내년 흑자 전환을 위한 단백질 음료·식물성 음료·건기식 등 신사업 육성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제과업계는 감소세가 예상되는 어린이 고객을 대신해 성인 대상으로 주력 소비층을 전환하며 안주용 과자로 매출 확대를 노리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웃돈을 주고 거래될 정도로 화제에 올랐던 먹태맛 과자가 대표 사례다. 농심 먹태깡은 올 6월 출시된 후 5개월여 만에 누적 판매량 1000만 봉을 넘었으며, 9월 롯데웰푸드가 선보인 ‘오잉 노가리칩 청양마요맛’도 추가 생산에 나서는 등 인기를 끌었다. 이 밖에 해태제과도 지난달 초 더(The) 빠새(빠삭한 새우칩) 간장청양마요맛‘을 내놓으며 도전장을 던졌다.
▲롯데칠성음료의 무가당 소주 제품 ‘새로’. 사진=롯데칠성음료 |
건강을 즐겁게 관리하는 헬시 플레저 열풍과 연계해 올해 식품업계는 덜어내기에 한창이었다. 메가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상품군으로 자리 잡은 제로 슈거가 그 중심에 있다. 특히, 올해부터 주류에도 열량과 영양성분을 표기하는 ‘주류 열량 자율 표시제’가 시행되면서 무가당 소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9월 과당을 사용하지 않은 ‘처음처럼 새로’를 내놓은 후 출시 7개월 만인 올 4월 초 누적 판매량 1억병을 달성했다. 흥행에 힘입어 최근에는 ‘새로’로 이름을 바꾸고 처음처럼 라인업에서 독자 브랜드로 독립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질세라 하이트진로 역시 올 1월 기존 진로를 무설탕 소주로 리뉴얼해 맞불을 놨으며, 충청권 향토 주류업체 맥키스컴퍼니도 3월 출시한 제로 슈거 소주 ‘선양’을 무기로 최근 수도권 진출에 나섰다.
제로슈거 제품 주 원료로 쓰이는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의 발암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업계는 한 차례 혼란을 겪기도 했다. 올 7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유해성 평가 결과, 아스파탐이 발암가능물질 분류군인 2B군(사람에게 발암가능성이 있는 물질)에 포함됐다. 이에 제로 슈거 시장이 침체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업계는 원료 대체 등 빠른 대응에 나서 판매량에 타격이 없다는 분위기다.
◇ Keyword #4. 글로벌 프랜차이즈 격전지
올해 치킨과 햄버거, 커피 등 물 건너온 맛을 내세운 글로벌 프랜차이즈 업체의 한국 진출이 잇따랐다. 올 1월 미국 치킨 윙 전문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윙스탑’이 서울 강남구에 1호점을, 6월 미국 3대 버거로 불리는 ‘파이브가이즈’가 서초구에 1호점을 개장했다. 5월에는 미국 유명 수제 햄버거 체인 ‘인앤아웃 버거’가 2019년 이후 4년 만에 강남에서 깜짝 팝업 매장을 운영하며 국내 진출 기대감을 키웠다.
최근에는 캐나다 국민커피로 꼽히는 커피 전문 브랜드 ‘팀홀튼’이 가성비를 앞세워 1호점인 신논현역점을 개장했고, 조만간 2호점을 여는 등 매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밖에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알려진 ‘인텔리젠시아’도 곧 국내 진출을 앞두고 있어 경쟁이 한층 치열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라면을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 |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을 선점하려는 국내 식품·외식업체들의 노력이 눈에 띈다. 삼양식품은 최근 출시한 똠얌불닭볶음탕면 등 불닭 브랜드 중심으로 해외 수출용 라인업 확대에 나섰으며, 농심도 해외 시장 맞춤형 라면은 물론 내년 1분기 가동 목표로 미국 2공장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오뚜기도 올해 미국법인 산하 자회사 ‘오뚜기 푸즈 아메리카’를 설립해 현지 생산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다. 또, 최근 기존 해외사업 부서를 승격시키고 글로벌 영업 전문가를 사령탑으로 앉혀 내수기업 꼬리표 떼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종합식품업체들은 떡볶이·김치 등 한국 고유 음식 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영국에서 식물성 만두·치킨·떡볶이 등 비비고 제품을 기반으로 한 배달 서비스 브랜드를 출시하고, 이와 연계한 팝업 매장도 운영했다.
대상도 올해 미국 현지 식품사 ‘럭키푸즈’를 인수하는 등 인프라 확충에 나선 데 이어, 9월에는 영국 런던에 최초로 김치 브랜드 ‘종가’ 팝업 매장을 여는 등 현지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국내 베이커리 업계 쌍두마차인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 뚜레쥬르는 나란히 오는 2030년까지 북미 매장 1000점을 목표로 매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리바게뜨가 매장 수 기준 앞서는 가운데, 뚜레쥬르는 오는 2025년 미국 신공장 완공을 기점으로 출점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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