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전기요금 인상 주장·방문규, 총선 차출 등 이유로 줄줄이 산업부 떠나
한전 적자 심화, ‘독립에너지규제委’ 설치도 감감 무소식…원전 확대도 불투명
▲(왼쪽부터)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전 장관, 방문규 산업부 장관, 안덕근 산업부 장관 후보자.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 1년 7개월 만에 세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를 선임했다. 에너지 시장과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 장관이 계속 바뀌는 사이 현 정부 출범부터 적자에 허덕이던 한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정 과제로 내세웠던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전력시장 구축’, ‘독립적 에너지규제기관 설립’은 감감 무소식이다. 국내 원전 확대와 수출 활성화도 기대와 달리 더딘 모습이다.
19일 산업부에 따르면 신임 장관은 청문회를 거쳐 이르면 올해 안에 취임할 예정이다. 정부 출범 1년 8개월도 안된 시점에 세 번째 장관을 선임한 것이나, 방 장관의 3개월 임기 모두 2013년 정부 조직이 산업통상자원부로 개편된 이래 최단 기록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두명의 장관이 모두 1년 6개월 이상 재임했다.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도 3명의 장관 모두 1년 이상 임기를 이어갔다. 현 정부에서는 전임 이창양 장관과 현 방문규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 8개월에 불과하다.
▲역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재임기간. |
에너지 업계에서는 산업부 장관의 잦은 교체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당이 원전 확대, 요금인상 억제 등에만 집중할 뿐 에너지정책과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무관심하다는 방증’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이창양 전 정관의 교체 배경은 ‘탈원전 폐기’ 속도를 못 낸 것과 전기요금 인상을 주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방문규 장관은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으로 대부분 해외에 머물렀다. 에너지 문제 현안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틈도 없었다.
신임 장관으로 선임될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경력 내내 통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인물로 통상 현안을 넘어 에너지문제 해결까지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한편 현 정부 들어서도 한전의 적자규모는 줄지 않고 있다. 전기요금을 40% 정도 인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발전사업자들의 손실을 강요하는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도입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임기가 남은 한전 사장을 교체하고 정치인 출신 신임 사장을 선임하는 한편 △한전 채권발행한도 상향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 △한전 자회사에 중간배당 요청 등 반(反)시장적 임시방편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2년 동안 송전망 확충도 재대로 안돼 출력제어 문제도 여전하다. 장관이 계속 바뀌면서 추진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력 실적 추이. |
방문규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대책과 관련한 질문에 "2021년 4분기, 2022년 1분기 적자가 12조원이었고 유가가 계속 올라가는 추세여서 추가적인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다음(정권)으로 넘겼다"며 "(현 정부가) 요금을 일년 동안에 40%를 올렸다. 지금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분들이 단계적으로 부담해 나가면서 해소하는 게 맞다. 누적 적자를 왜 지금 한번에 요금 올려서 해소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건 정확한 말이 아니다"라고 밝한 바 있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총선 등 여론을 의식해 지난 정부 탓이나 공기업 쥐어짜기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전력시장의 시장원칙 확립 △독립 에너지규제기관 설립 △송전망 확충 △에너지믹스 합리화 등 근본적인 문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정부가 생산원가가 반영되지 않은 전기요금 체계를 고수하면서 전력시장의 비효율은 물론 한전과 발전사들의 적자가 심화되고 있다"며 "왜곡된 가격체계는 국가적, 비효율적 에너지소비로 귀결되며 결국 전기 판매(공급) 사업자인 한전과 발전사의 부실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외 선진국들과 같이 독립적 에너지규제위원회 설립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전력시장 통제, 요금결정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한전 적자 문제가 심화하면서 에너지시장 규제 개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국정과제에도 포함됐지만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막히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자력계에서는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비판만 했을 뿐 원전 정책이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범진 원자력학회 회장은 "당장 원전을 늘리는 것은 이미 실기한 듯하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원전 건설계획이 없고 제11차 계획에도 신규원전을 넣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부지확보를 위한 노력을 선행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정부의 신규원전 건설계획은 ‘립서비스’에 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와 여당, 산업부는 여전히 원전 확대와 수출의 전제 조건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특별법’도 처리하지 못했다.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이 반영되더라고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원전건설 기간은 예전의 2배로 늘어 실제 공사 기간만 10여년이 소요된다. 부지 등 사전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적어도 15년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노동석 원자력소통지원센터장은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신규원전 유치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여론이 여전하고, 공사기간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규원전의 기간 내 준공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라며 "원전 준공 후에도 송전망과 양수, ESS 등 에너지저장장치의 대량 확보가 없다면 원활한 가동은 불가능하다. 전력 유통의 전제인 송전망 확충은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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