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에너지+] 음주사망 매년 약 5천명…'관대한 술문화'부터 고쳐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1.07 16:30

■ 알코올성 질환 심각성과 음주 줄이기 전략
간암·간염·간경변증 등 각종 간질환 유발
국내 알코올 사망자 약 80% 간질환 때문
고위험군 치료 필요하지만 절주정책 중요
개인적 '금주 결심'보다 전문치료 받아야

순천향 서울 장재영진료사진

▲술을 자주, 과하게 마시면 신체와 정신의 건강에 해를 끼쳐 몸에서 경고음을 울린다. 그럼에도 음주가 계속되면 올코올중독으로 이어져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관계에서도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사진은 간질환 분야 권위자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재영 교수가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순천향대 서울병원

[에너지경제신문 박효순 메디컬 객원기자] 알코올(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버금갈 정도로 오래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음주를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술은 즐겁게 적당히 마시면 즐겁고 건강에 유익한 측면도 있지만 과음하면 몸과 정신과 마음을 크게 해친다. 과도한 음주는 여러 질병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술의 양면성은 술을 ‘악마가 흘린 천사의 눈물’, 또는 ‘천사가 흘린 악마의 눈물’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코올은 대사과정 중 간의 지방산 대사를 교란시켜 간 내 지방의 과다생산과 축적을 유발하고, 염증성 사이토카인들로 인한 간염 및 섬유화를 일으킨다.

최근에는 알코올 섭취로 생긴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선천성·후천성 면역에 변화를 일으켜 지방증·간염·섬유화 및 간경변증·간암 등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코올 간질환이 발생하는 데에는 음주량·음주습관뿐 아니라 △유전 요인 △성별 △인종 △영양결핍 △비만 △바이러스 인자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 전세계 해마다 300만명, 국내 4900여명 ‘알코올’ 때문에 사망

간질환 분야 진료·연구·교육의 권위자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재영 교수(소화기내과)는 "알코올 간질환은 지방간·간염·간경변증·간암 등 모든 종류의 간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술을 끊는 ‘단주(斷酒)’가 알코올 간질환의 가장 중요한 치료이나, 정신의학 문제인 알코올 사용장애(중독 등)와 결부돼 있어 개인 의지만으로 단주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사회적인 협조와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 걸쳐 매년 300만여 명이 알코올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해에 알코올 관련 사망자가 4900여 명이며, 이 가운데 알코올 간질환이 77.8%를 차지하고 있어 범사회적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알코올 간질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알코올 소비량(음주량)을 줄이고,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를 조기에 찾아 치료하는 전략과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알코올 관련 건강 문제는 알코올 소비와 연관된 고위험군 치료에 집중하는 정책보다는 한 국가나 사회 전체 인구집단의 알코올 소비량을 줄이는 정책과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

따라서, 음주문화의 개선을 위해 음주 폐해를 줄이기 위한 자발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고, 음주 정책에 대한 국가 지원사업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나 정부가 일찍이 흡연에는 일반광고를 금지시키고 포장에 폐암 경고 그림을 의무화한 것과 달리 음주에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장재영 교수는 "기존의 음주 중심 회식문화를 개선하려는 운동이 직장 차원에서 퍼져 나가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은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 주류광고 제한이 강화되어 음주 욕구를 자극하는 장면 등을 넣을 수 없고,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담은 술병도 제한하는 등 정책이 마련된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장 교수는 평가했다.

◇ 1회 5∼7잔 이상, 주 2회 넘으면 ‘고위험 음주’

우리 사회의 비교적 관대한 음주문화 때문에 많은 알코올 사용장애자들이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어 각종 폐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환자 수는 139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9조 4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 2022년 한 해 알코올중독 진료를 받은 인원은 약 5만 8400명에 불과했다.

장재영 교수는 "알코올 사용장애자들은 이미 각종 신체적 질환이 합병되고, 정신적으로도 취약한 단계로 스스로 중독관리센터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들에게 직접 다가가고 치료 및 재활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학회는 지난해 발간한 ‘한국인 간질환 백서 2023’에서 "알코올 과다 섭취는 간질환 외에도 치매, 뇌병증, 확장성 심근증, 췌장염, 태아 기형, 암 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간학회에 따르면, △술을 끊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술 때문에 질책을 받고 짜증을 낸 적이 있다 △술 문제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해장술을 하거나 오전에도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있다 등 4가지 항목 중 2개 이상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술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1회 음주량이 7잔(여자 5잔) 이상이고, 주 2회 이상 음주하는 경우를 ‘고위험 음주’로 규정한다. 이런 고위험 음주는 신체 및 정신 건강에 각종 빨간불이 켜지게 만든다.

1회 7잔 미만, 주 1회 이하로 마시는 음주자에 비해 건강·범죄·가정·경제·일상생활의 지장 등 각종 폐해 경험률은 2.5배, 속칭 ‘필름이 끊긴다’고 하는 블랙아웃(술이 취했을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경험률은 3.5배 높다.

파주보건소 추천 ‘부부가 함께하는 술 줄이기 작전’
내용 효과
1. 내과 진료를 받게 한다 ‘당장 술 끊지 않으면 생명에 중대한 위험‘ 메시지 전달
2. 규칙적인 식사하게 한다 ‘출출하면 술 한잔 ’ 생각 안나도록 함
3. 가족과 보내는 시간 많게 한다 음주로 연결되는 외로움·스트레스 해소 및 차단
4. 고민거리를 음주습관과 연계시킨다 지나친 음주가 오히려 고민 해결에 악영향 준다고 설득
5. 음주 줄이기, 부부가 함께 풀어나간다 음주 유발 각종 스트레스 풀어주는 비음주 해소책 공유
◇ 술 줄이기 전략, 부부가 함께 해야 더 효과적

경기도 파주보건소는 홈페이지에 배우자가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일 경우 ‘부부가 함께하는 술 줄이기 작전’을 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첫째, 내과진료를 받게 함으로써 ‘지금 당장 술을 끊지 않으면 생명에 중대한 위험이 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직접 듣게 한다.

둘째,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게 한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술생각이 나기 쉬우므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여 출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한다.

셋째,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유도한다. 가족과 떨어져 있다 보면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바로 그때 술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배우자가 집에 있을 때 편하게 쉬게 한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는 스트레스가 증가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넷째, 평소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을 음주습관과 연계해 설득한다. 가령 배우자가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면 ‘이대로 계속 술을 마신다면 해고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줌으로써 그 심각성을 일깨워 준다.

다섯째, 부부가 함께 스트레스 해소방법을 찾아본다. 기분이 우울할 때, 짜증이 날 때, 스트레스가 쌓인다 싶을 때 음주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강 원장은 "알코올 의존증은 갑자기 발병하는 질환이 아니고 장기간에 걸쳐 신체적, 정신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는 질환이다"라며 "금주를 결심했다면 금단 증상에 잘 대응하고, 잘못된 음주 습관부터 바로 잡아나가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오랜 기간 과도한 음주를 하게 될 경우 뇌에 변화를 줘 이성적으로 음주를 자제하려고 해도, 마치 반사신경처럼 사소한 자극에도 음주를 하게 된다.

최 원장은 "술을 끊겠다는 각오와 구체적인 계획 실천에도 불구하고 금주에 번번이 실패하는 것은 혼자서는 술을 끊기 어렵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준다"면서 "지역 내 중독관리지원센터나 전문병원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anyto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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