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우 산업부 기자
▲여헌우 산업부 기자 |
[라스베이거스(미국)=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고틀립 다임러와 칼 벤츠가 내연기관차를 발명한지 138년이 흘렀다.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방식으로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연 게 110년 전이다. 기업들은 피 튀기는 경쟁을 펼치며 제품 품질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도로 상황 한계 탓에 자동차 성능을 개선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룡’처럼 성장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계속해서 시장 판도를 바꿀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내연기관차 승차감·연비 경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전기차라는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지만 연료가 휘발유에서 전기로 바뀔 뿐이다. 업체 간 기술 격차는 의미 없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 Software-Defined Vehicle)이 주목받고 있다. 소프트웨어(SW)가 시장을 완전히 뒤흔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SDV는 주로 일반 휴대폰이 스마트폰까지 진화하는 과정으로 비유된다. 예전에는 전화(이동)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만들고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제조사는 차를 팔고 난 뒤에도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주요 업체들은 이미 사활을 걸었다. 폭스바겐그룹은 SW 자회사 ‘카리아드’를 설립하고 내년까지 4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토요타 역시 우븐플래닛홀딩스를 세워 ‘아레나’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자체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동시에 매년 5000명 이상 SW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예 새로운 플랫폼인 ‘MMA’를 준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포티투닷(42dot) 인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달 중 대규모 조직개편을 예고한 상태다.
이들의 목표는 ‘자동차 업계 iOS’ 또는 ‘자동차 업계 안드로이드’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부품 업체인 보쉬, 콘티넨탈 등도 SDV 관련 연구개발(R&D)에 수조원을 쏟고 있는 이유다. 포드 등 투자 여력이 없는 회사나 개발이 늦어진 브랜드는 경쟁사가 만든 OS를 돈 내고 써야 할 수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가올 SDV 경쟁에 비하면 전기차 전환은 신경 쓸 부분도 아니다. 전동화 기술은 추격이 가능하지만 SW 분야는 승자독식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SDV는 자율주행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 간 SDV 전쟁 ‘1차전’ 승패는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CES 2024’에서 가려진다. 대부분 업체들이 저마다 청사진만 제시했을 뿐 SDV와 이를 운영할 OS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한 상태다. 이미 현장에서는 다른 회사의 기술력 수준을 확인하려는 첩보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번씩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아간다. 앞으로는 SDV에서 배터리를 최적화하는 앱을 사용하고, 승차감을 올려주는 업데이트를 받을 것이다. SW는 분명 자동차 산업 판도를 바꾼다. 전세계를 호령하던 휴대폰 기업들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뒤 몰락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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