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생안정 대책' 앞서 당정대회의·새해 경제정책방향서 대부분 제시
"총선 앞둔 선심성 정책 남발은 정부의 선거 중립 의무 포기 의심케 해"
민주당 "윤대통령, 대놓고 관건선거 획책…공수표 남발해도 민심 안돌아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 겸 물가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경제와 물가 지표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윤수현 기자] 4·10 총선을 겨냥한 집권당과 정부의 선심성 정책행보를 두고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당정이 새해 들어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유사 정책 발표를 부쩍 늘려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설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집권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 주요 인사들이 일요일인 이틀 전 당정대 고위급 회의를 갖고 내놓은 민생대책의 판박이다.
‘민생 정책’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회의 형태만 달리했을 뿐만 발표한 주요 대책의 대부분이 겹쳤다.
이에 대해 한편에선 정부가 정책 소비자인 국민과 소통을 강화, 정책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4·10 총선을 겨냥한 재탕·삼탕의 이른바 ‘표지갈이 정책’이라는 비판적 지적도 내놓았다.
표지갈이 정책이란 내용은 그대로 두고 표지만 교체해 내놓은 정책을 말한다.
□ 정부의 설 민생대책 주요 내용
설 연휴 전후 노인일자리 63만명 등 직접일자리 70만명 채용 |
농축수산물 최대 30% 할인 |
비수도권 숙박쿠폰 20만장 배포(5만원 이상 사용 때 3만원 할인) |
취약가구 전기요금 할인 1년 연장 |
설 연휴 기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
KTXSRT 역귀성 최대 30% 할인 |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주차장 무료 개방 |
온누리상품권 구매한도 50만원 상향 |
모바일 1인당 구매한도 월 최대 200만 |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기간 확대 |
제2금융권 대출 소상공인 최대 150만원 이자 환급 |
통합문화이용권(문화누리카드) 1인당 지원금 11만원→13만원 |
저소득층장애인 평생 교육바우처 지원 대상 6만명→8만명 |
정부가 이날 발표한 ‘설 민생안정 대책’은 대체로 세금 부담을 깎아주거나 정부의 재정지원을 늘려 요금을 할인해주는 내용이다.
주요 대책은 △설 연휴 전후 노인일자리 63만명 등 직접 일자리 70만명 채용 △농축수산물 최대 30% 할인 △비수도권 숙박쿠폰 20만장 배포 △취약가구 전기요금 할인 1년 연장 △설 연휴 기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및 KTX·SRT 역귀성 최대 30% 할인 △온누리상품권 구매한도 50만원 상향 △제2금융권 대출 소상공인 최대 150만원 이자 환급 등이다.
이런 대책들은 대부분 지난 14일 열린 당정대 고위급 회의나 4일 발표된 새해 경제정책방향에 담겼던 것이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만큼 정부의 이같은 반복적 릴레이 정책 발표는 선심성 정책 홍보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이날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직접 일자리’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직접 일자리는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다. 정부는 이미 올해 직접 일자리 118만 명 제공 계획을 세우고 관련 예산까지 새해 예산안에 반영했다.
또 올 한 해 연간 직접 일자리의 90%(105만5000명)를 총선 직전인 1분기에 채용하고 상반기 중 그 채용률을 97%(114만2000명)까지 높이기로 했다. 설 연휴 직접 일자리 채용의 세분화하면 스쿨존 교통안전 지도 및 환경 정비 등 노인 일자리 63만 명, 자활 사업 4만 명,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3만5000명 등이다.
정부는 더 나아가 이번 대책에서 1분기 직접 일자리 채용 인원 3분의 2 이상을 설 연휴 전후에 뽑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1분기, 특히 설 연휴 전후에 관련 정책역량을 집중시키면서 총선을 위한 선심성 생색내기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농·축·수산물 정부 할인지원율을 최초로 30%까지 상향하고 최대 60%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이미 이틀 전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표됐다. 이달 4일 ‘2024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농·축·수산물에 대한 할인지원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올해 온누리상품권 개인 월 구매한도를 50만원으로 상시 상향하고 총 발행규모도 4조원에서 5조원으로 확대를 발표했지만 당정대 고위급회의와 ‘2024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발표된 사례다.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숙박비 3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숙박쿠폰 20만 장도 배포도 ‘2024 경제정책 방향’의 올해 45만장 배포 계획의 일부다.
제2금융권 대출 소상공인 최대 150만원 이자 환급이 가능한 조치도 당정대 고위급 회의 및 ‘2024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발표된 조치다.
△취약가구 전기요금 할인 1년 연장 △설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KTX·SRT 역귀성 최대 30% 할인도 이틀 전 당정대 고위급 회의 루트를 통해 제시됐다.
‘설 민생안정 대책’ 뿐만이 아니다.
622조원을 투자해 경기 남부에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전날 정부 발표도 기존 발표의 재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내놓은 ‘국가 첨단 산업 육성 전략’에서 민간 투자 계획 가운데 삼성전자가 라인 한 곳을 늘리는 데 60조원을 추가하겠다고 밝힌 것 외에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정책을 되풀이 발표하는 것은 정부라면 마땅해 해야 하는 고유한 정책 홍보 기능이고 최근 그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게 관가 또는 정치권의 분석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지방 기초단체 한 공무원의 ‘유튜브 시청홍보’를 혁신사례로 직접 거론하며 정책 홍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께서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면 그 정책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며 "어떤 정보를 어디로 어떻게 전해야 국민들께 확실히 전달될지, 철저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동일한 정책 발표를 재탕·삼탕하는 것은 선거 중립 의무를 가진 정부의 선거개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재건축 재개발 착수 기준을 위험성에서 노후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정비사업의 대표 규제로 꼽히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재개발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로부터 보름 만인 지난 10일 일산신도시 현장을 찾아 관련 부처인 국토교통부 등과 지은 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 정책을 다시 이슈화하기도 했다. 30년 이상 된 주택의 경우 안전진단을 받지 않고도 정비사업을 시작해 사업기간을 앞당기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제완화는 국회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사항으로 현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 의지만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마치 곧바로 정책 시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민주화 이후 이렇게 대놓고 관권선거를 획책한 대통령은 없었다"며 "윤 대통령이 연초부터 민생토론회를 핑계로 수도권의 여당 약세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당의 총선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이 수도권 약세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수표를 남발한다고 해서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선거에 정신이 팔려 격전지를 돌며 선거운동이나 매진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심판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정부에서는 올 초 발표했던 경제정책을 재탕·삼탕하는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다"며 "그 효과는 미지수 임에도 낙관적 전망으로 일방적 발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반복적인 정책 발표의 배경에 대해 "당정이 총선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라며 "전형적인 ‘票(표)퓰리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ysh@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