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대만 총통선거 결과와 한국의 외교전략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1.17 08:07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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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세계 70여 국가에서 20억여 명이 참여하는 ‘지구촌 선거의 해’에 지난 13일 스타트를 끊은 대만 총통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40.05%의 득표율로 친중 성향의 국민당 허우여우이 후보(득표율 33.49%)를 6.5% 포인트차로 제치면서다. 대만은 지난 2000년 첫 수평적 교체 이후 3명의 총통이 모두 재선에 성공하고, 다음 선거에서는 반대 측 정당 후보가 승리해 8년 주기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일이 반복됐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이 같은 관행을 깨며 10년 이상 장기 집권하게 됐다.

야권 단일화가 무산돼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청년세대가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득표율 26.46%)를 대거 지지하면서 제3 정치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함께 실시된 입법원(의회) 선거에서는 의석수 113석 중 국민당 52석, 민진당 51석, 민중당 8석, 무소속 2석으로 여소야대 구도가 된 가운데 민중당이 캐스팅보트를 거머쥐게 됐다. 군용기와 군함 등을 동원한 중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민진당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미중 대리전’으로 평가된 이번 선거에서 대만의 민심은 중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한 셈이 되었다. 대만 정체성이 변화·고착화되면서 총통선거에서 친중 후보의 설 자리가 좁아진데다 중국의 압박이 역풍을 부른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 총통선거 결과에 대해 중국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조국이 결국 통일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대만 지역의 선거는 중국의 지방 사무"라며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반면 미국은 안도감을 숨긴 채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라이 당선인이 "대만의 주권은 중국에 속하지 않는다"거나 "대만은 이미 독립 상태에 있다"고 발언하는 등 대만 정계에서 ‘독립’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인물이지만, 미 행정부는 ‘트러블 메이커’라는 지탄을 받았던 천수이볜 총통(2000∼2008년 재임)과는 달리 온건하고 신중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라이 당선인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대만이 전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며 "중화민국(대만)이 계속해서 국제 민주주의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밝혔듯이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할 확대를 모색할 것이다. 민진당의 연속 집권으로 초조하게 된 중국은 대규모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홍콩에 강경 조치를 취한 것처럼, 대만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일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양안간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며 한반도 정세와 우리나 국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한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중국이 군사 및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대만을 압박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대만해협에서 위기의 일상화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전 세계 화물선박의 절반이 대만 주변 해역을 통과할 정도로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화물선의 30%이상이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이 지역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에 대비하는 방안을 시나리오별로 강구해 놓아야 한다.

둘째, TSMC(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를 보유한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반도체 역량을 활용하여 국제사회를 끌어들여서 중국과 대항하려고 할 것이다. 라이 당선인이 선거 기간중에 대만과 한국이 민주·자유·인권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 공급망 형성을 위한 안보 대화를 열겠다고 언급한 만큼, 민주동맹을 기치로 한국과의 협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대만과 협력한다면 반도체 역량 강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한중 관계에는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 힘겨루기가 첨예해질수록 더욱 선명한 목소리를 내도록 압박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한 듯 우리 외교부는 대만 선거 결과에 대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며, 역내 평화와 번영에도 필수 요소다. 우리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원론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대만문제를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은 타국의 입장 표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정부가 대만해협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를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내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자국의 국익이 관련되어 있으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국익이 손상되고, 국제평화와 직결되어 있으나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워하고 회피하면 평화가 유지되기 어렵다. 다만, 단독으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되도록 많은 나라들과 함께 내야만 효과도 있고 대응하기가 수월하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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