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과 김계환 사령관이 결국 법정에서 마주했다.
박 전 수사단장은 1일 오전 군검찰이 자신을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재판의 두 번째 공판에 출석했다.
그는 출석 직전 용산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서서 김 사령관에게 “지금이라도 사령관으로서 명예로운 선택을 하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저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고 채수근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됐다“며 "채수근 상병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야 한다. 과연 떳떳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모든 일들이 올바르게 정의되는 사필귀정의 해가 되도록 국민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 전 단장의 출석길에는 해병대 전우회 회원 약 20명과 공군 성폭력 피해자인 고(故) 이예람 중사 아버지, 군인권센터 등이 동참했다.
반면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 사령관은 공판 직전 차량으로 군사법원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뒤 발언 요청에 응하지 않고 황급히 주차장 쪽 문을 통해 재판정으로 향했다. 군사법원 건물 정문을 통하지 않고 지하 주차장 문으로 이동한 것은 언론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 보다 먼저 피고인석에 착석했다. 이후 김 사령관이 법정에 입장하자 즉각 일어나 거수경례와 함께 “필승" 구호를 외쳤다.
공판 시작 뒤에는 박 전 단장 측 변호인이 김 사령관에게 지난해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 보고에 서명한 이종섭 국방부 전 장관이 이튿날 출국을 앞두고 갑자기 보류를 지시했던 상황에 대해 물었다.
변호인은 '이 전 장관이 이첩을 보류하라며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사령관은 이첩을 막을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고, 김 사령관은 “장관님 지시가 없었으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을 포함해 수사단 전체 인원이 잠 안 자고 열심히 노력한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조사)한 것에 대해 (내가) 신뢰한 건 인정한다"며 “이첩 전까지 수사단에 수사를 위한 모든 권한과 여건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김 사령관은 당초 임 사단장이 사의 표명을 한 만큼 인사 조치를 추진했지만, 이 전 장관이 '그대로 정상 출근시키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했다.
이 전 장관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이 7월 31일 전화로 장관의 뜻이라며 ①언론 브리핑 보류 ②국회 설명 보류 ③임성근 사단장 정상출근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다만 “(수사 내용은) 이첩보류 지시와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며 박 전 단장이 자신의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이첩했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재판부가 '항명과 관련해 피고인에 대해 처벌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지금도 제 부하다. 법원에서 공정히 판결해달라"면서도 “이첩 보류와 관련한 지시를 어긴 건 명확하다. 군인이 지시를 어긴 것은 어찌 됐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8월 2일 박 전 단장의 부하와 통화하면서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수사단원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사령관은 마무리 발언에서 박 전 단장을 겨냥해 “자의적인 법 해석과 본인이 옳다고 믿는 편향적 가치를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영웅심리로 흔들어선 안 된다"며 “항명 사건이 없었다면 순직장병 부모님의 말씀처럼 이미 진상은 규명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사령관 퇴장 이후 발언권을 얻은 박 전 단장은 “사령관님은 정말 부하를 위하고 해병대를 사랑하는 분으로 가슴 깊이 존경해왔고 충성으로 보답해왔다"며 “오늘 참담한 일을 (겪으며) 현장에서 얼마나 고충이 심하실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박 전 단장은 재판이 종료된 후 '사령관이 항명 혐의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분이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슴 아프다"라며 말을 아꼈다.
김 사령관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 왜 거수경례했냐는 질문에는 “군인이 상관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이어 “해병대의 명예는 진정한 정의와 자유를 향할 때 참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며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진정한 명예일지 국민이 판단하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