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브런(좌), 엑슨모빌(우) 로고(사진=로이터/연합)
미국의 빅오일(거대 석유회사) 엑슨모빌과 셰브런이 지난해 역대급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못지 않은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주가 상승률은 이들에 비해 한참 뒤쳐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주식 시장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빅오일은 국제유가 하락장에도 10여 년 전 전성기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익을 내고 있는 동시에 올해는 주주환원 정책 강화로 더 많은 현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것을 예고했지만 주가 상승률은 빅테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36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2022년도 연간 순이익 557억달러보단 감소했지만 2012년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셰브런의 지난해 순이익은 214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던 전년도(355억달러)보다 줄었지만 201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이다.
이 두 회사는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도 펼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지난해 주주환원을 통해 587억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그 결과 두 회사의 주주환원 규모는 S&P500 상위 10대 기업(엑슨모빌 4위·셰브런 7위)에 속하기도 했다. 애플, 알파벳, 마이크로소트프가 1~3위를 차지한 것을 고려하면 빅테크를 제외할 경우 엑슨모빌은 S&P500 상장사 중 최대 규모의 주주환원을 실시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셰브런은 실적발표에서 올해 분기 배당률을 8%로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엑슨모빌은 자사주 매입 규모를 지난해 175억달러에서 올해 200억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
두 기업의 수익성 또한 안정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현재 미국 퍼미안 분지와 남미 가이아나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어 국제유가가 현재 수준보다 배럴당 최대 40달러 떨어져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또 정유 및 석유화학 사업을 통해 유가하락에 대비할 수 있고 엑슨모빌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트레이딩 사업을 늘리고 있다.

▲빅테크(사진=로이터/연합)
그럼에도 엑슨모빌과 셰브런 주가는 지난 2일 각각 0.41% 하락, 2.94% 상승 마감했다. 같은날 주가가 각각 20%, 8% 치솟은 메타플랫폼(메타), 아마존과 대조적이다. 블룸버그는 “이들의 뛰어난 성과는 빅테크로부터 밀리는 것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특히 엑슨모빌과 셰브런이 원유 생산량을 크게 늘리면서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오른 점, 석유 소비가 최소 2030년까지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 점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섹터가 S&P 500 지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3.7%에 불과하다. 반면 기술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육박하다.
4400억달러를 운용하는 누버거 버먼의 제프 윌 선임 애널리스트는 “(주가 상승에 대한) 그린라이트여야 한다"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석유공룡이 증시에서 외면받는 배경엔 투자자들이 빅테크를 미래 산업을 주도할 기업들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잠재적인 이익 성장을 제공하는 반면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은 빅오일에 위협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미국 석유기업들의 증산 드라이브로 글로벌 원유시장이 과잉공급에 빠질 수 있으며 사우디 또한 빼앗긴 시장 점유율을 되찾기 위해 물량을 풀 리스크도 존재한다. 실제 사우디는 과거 2014년, 2020년에 원유 공급을 대폭 늘려 유가를 폭락시킨 바 있다.
석유사업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피커링 에너지 파트너스의 댄 피커링 창립자는 “메타가 발표한 자사주 매입 규모는 데본에너지와 다이아몬드백 에너지를 합친 것으로 이는 투자자들로 주목을 받는다"며 “셰브론은 '퍼미안 분지에서 사업을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이부분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석유기업들이 마침내 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윌 애널리스트는 “석유의 희소성이 부각돼야 에너지 섹터 주가가 더 높은 수준에 거래될 수 있다"며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안에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마이크 워스 셰브런 최고경영자(CEO)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 경제에 필수적인 산업이며,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라며 “인내심이 있는 주주들에겐 가치투자의 진정한 기회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들어 엑슨모빌과 셰브런 주가는 각각 0.38% 하락, 1.85% 상승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