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 IFRS17 도입 이후 지난해부터 ‘최대실적’ 행렬
재무제표 신뢰도 미정착·인수자 환경 변화 등은 변수
보험사들이 지난해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첫 연간 성적표를 속속 받아들고 있다. 실적 불안정성이 일부 소멸됨에 따라 올해는 매각에 나선 보험사들의 M&A(인수합병) 딜이 성사될 수 있을지 분위기에 시선이 모인다.
◇ 매각 대상 보험사, 연간 실적 반영한 가치책정 가능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설 명절을 전후로 보험사들이 IFRS17를 적용한 첫 연간 실적 발표 시즌에 들어갔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전년 대비 84.2% 증가한 1조5748억원의 당기순익을 거뒀다고 7일 잠정 공시했다. KB손해보험은 지난 7일 발표한 실적발표에서 지난해 순이익으로 7529억원을 나타내며 전년 대비 약 35.1% 상승했다. 신한라이프도 지난 8일 작년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5.1%(230억원) 증가한 472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이 새 회계제도를 반영한 지난해 결산 실적으로 선방한 성적을 나타내자 올해 매물로 나와 있거나 잠재매물로 지목되는 보험사들의 실적에도 기대감이 실린다. 현재 매각절차를 공식화했거나 대상으로 꼽히는 보험사는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KDB생명보험,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동양생명, ABL생명 등이다.
연간 실적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지난해와 달리 보험사 인수 환경상 적기가 된 것으로 해석된다. 연간 실적비교가 가능해져 IFRS17 도입으로 인한 변동성이 일부 걷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IFRS17의 계리적 가정을 낙관적으로 적용해 실적을 부풀렸다는 지적이 일었지만 하반기 금융당국이 내놓은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이 반영된 연간 실적이 나오면 인수자들이 가치책정에 있어 보다 명확한 수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을 반영했을 때 오히려 충격파가 생긴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IFRS17 도입 후 산출한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성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롯데손보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까지 누적 순익 1130억원, 보험계약마진(CSM) 약 2조원을 기록하며 '적자회사' 딱지를 뗐다. 지난해 3분기 실적도 소급법의 허용으로 2629억원의 누적 순익을 거둔 것으로 회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적용(전진법)한 실적은 적자(-57억원)를 기록했다. MG손보의 경우 지난해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액수가 계속 변동됐다. 연초 기준 CSM은 8414억원이었지만 같은 해 9월 말 3300억원으로 절반 넘게 줄어든 것이다. 이 역시 당국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인한 충격이었다.
일부 매물의 경우 자본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금감원이 발표한 '2023년 9월 말 보험회사 지급여력비율 현황'에 따르면 MG손보와 KDB생명의 9월 말 기준 경과조치 후 지급여력비율(K-ICS)은 각각 64.5%, 134.1%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에 미치지 못했다. 지급여력비율은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비율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KDB생명의 인수를 검토했다가 포기하며 여섯 번째 매각 시도의 무산을 겪었다. MBK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천억원대의 추가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 BNK금융 인수작업 시동…인수자들 매각 전략 판도는
지난해와 비교해 인수자들의 의지나 상황도 매물 입장에서 변화가 생겼다. 보험계열사가 없거나 경쟁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BNK금융지주 등이 유력한 인수자로 꼽힌다. 지주사 전환을 꾀하는 교보생명도 손보사 매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IB업계에 따르면 BNK금융그룹은 올 들어 BNP파리바카디프생명과 MG손해보험 인수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BNK는 과거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2026년까지 신사업 진출과 자회사 인수가 제한돼 있어 사모펀드가 조성하는 펀드의 출자자(LP)로 참여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
우리금융은 증권사를 우선적인 인수합병 대상으로 보겠다고 밝힌 만큼 보험사를 당장 사들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는 한국포스증권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근 자본확충 규모를 4000억원 수준으로 증액한 만큼 자기자본 700억원 수준의 소형사인 포스증권을 인수하고도 보험사를 추가 인수할 여력이 있다.
신한금융은 신한EZ손보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새 손보사 인수를 검토할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지만 내부에서는 당분간 현재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선을 그었다고 전해진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KDB생명에 대해 인수를 포기한 만큼 우량 매물이 시장에 나올 때 까지 기다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IFRS17 적용 연간 실적으로 보험사 체력 민낯이 드러나면 인수자들의 의지도 달라질 수 있다. 건전성 문제와 보험사 인수를 고려하는 금융사들의 인수 전략에 따라서도 실제 M&A로 성사될지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그동안 깜깜이 기업가치에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미온적인 태도가 시장에 있었지만 실적상 불확실성이 걷힌 만큼 보험사가 필요한 인수자들은 서서히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