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ESG 공시제도 도입 계획
미국 ESG ETF 수요 둔와…청산·순유출
유럽에선 패시브 ESG ETF 인기…본래 취지에 어긋
빌 애크먼 “ESG 엄청난 해 끼쳐…마케팅 수단”

▲가뭄(사진=AP/연합)
한때 글로벌 금융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갈수록 식어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내 상장기업들에게 적용될 ESG 공시제도 도입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갈수록 ESG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ESG에 대한 투자 관심은 지난 1년 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산하 조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에 새로 상장된 ESG 상장지수펀드(ETF)는 48개로 집계됐다. 2022년과 2021년에 상장된 ESG ETF가 각각 104개, 125개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ESG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지난해 미국 증시에서 청산된(상장폐지) ESG ETF는 36개로, 전년 대비 두 배 늘어났다. 청산된 ETF 중 60% 가량은 운용사들이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액티브펀드였다.
ESG 시장규모가 가장 큰 유럽에서도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리서치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패시브 ESG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213억달러로 집계됐는데 같은 기간 액티브 ESG 펀드 투자자들은 180억달러를 회수했다.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액티브 펀드가 본래 ESG의 취지에 부합하지만 투자자들은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ESG 펀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모닝스타의 호텐스 비오이 지속가능성 리서치 이사는 이를 두고 “실망스러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블랙록이 운용하는 ESG 펀드 규모는 3200억달러로 세계 1위지만 이중 85%가 패시브 펀드다.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아문디는 자사가 운용하는 패시브 ESG 펀드 비중을 작년 33%에서 내년 4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미국 증시에 거래되고 있는 ESG ETF들 마저도 살아남을지 미지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ESG ETF 시장에서 43억달러가 빠져나가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순유출이 발생했다. 130억달러로 시가총액 1위 ESG ETF인 'iShares ESG Aware MSCI USA ETF'(티커명 ESGU)의 경우 작년 90억달러에 이어 올해에도 8억 900만달러가 유출됐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샤힌 콘트랙터 선임 ESG 전략가는 신규 ETF 출시의 축소, ETF 청산과 자금 유출의 증가추이로 미국에서 수요가 위축되고 있는 점이 명백하다며 “이런 추이가 올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빌 애크먼(사진=로이터/연합)
월가 거물들 사이에서도 '반(反) ESG'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6월 ESG가 너무 정치화됐다며 이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대표사례다. 핑크 CEO는 ESG 투자 확산에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헤지펀드계의 거물 빌 애크먼도 지난 11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ESG 움직임은 특히 원자력과 화석연료 에너지와 방산 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 중단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투자 중단은 우리의 에너지 독립을 손상시켰고, 세계적인 환경 파괴로 이어졌으며 국방력을 약화시켰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ESG 움직임으로 유럽은 러시아 천연가스에 더 의존하게 됐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ESG의 책임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애크먼은 또 “ESG는 많은 자산운용사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ESG 펀드를 만들어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투자자들로부터도 고액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블랙록, 피델리티, JP모건체이스 등이 운용하는 액티프 ESG 펀드에 대한 수수료 중간값은 패시브 펀드보다 70%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ESG가 갈수록 정치화되고 있는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 공화당은 ESG를 두고 '워크 자본주의'(깨어있는 척하는 자본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의 의제에 대해 '자본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진보세력의 선동'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사 일부는 '워크 자본주의'라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ESG 상품 리브랜딩에 나서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콘트랙터 전략가는 투자회사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기후 전환' 등의 테마로 세분화하는 데 집중했고 이런 추이는 갈수록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