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 대란 조짐…애꿎은 환자 피해 우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2.18 09:39

정부-의사단체 강대강 대치 지속…대형병원 수술·입원일정 조정
전공의, 19일 사직서 제출· 20일 업무 중단 등 집단행동 예고
의협 비대위 “25일 규탄대회…정부 겁박 지속하면 법적 조치”
의대생도 잇따라 집단행동에 가세…후폭풍 확산 조짐도
정부 “의사단체 불법파업 엄정 처리…어떤 구제·선처도 없다“

빅5병원 전공의 전원 19일까지 집단사직

▲서울의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사단체와 정부의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면서 애꿎은 환자 피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은 19일 한꺼번에 사직서를 내고 20일 의료 현장을 떠나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전공의들의 선배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공의들의 자발적 사직에 대한 지지입장과 함께 정부의 압박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형 병원들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앞서 수술과 입원 일정을 조율하며 대비에 나섰다. 사실상 의료대란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현실화하면 20일부터 대형 병원 등을 중심으로 의료 차질 또는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이미 일부 사직서 제출 전공의들에 업무개시(복귀) 명령을 내린데 이어 전공의 등 의사단체의 불법 파업에 대해선 '엄정 대응'하고 향후 어떠한 구제와 선처도 없을 것이라며 연일 경고 메시지를 냈다.


특히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에 따르지 않은 전공의 등에 대해선 '기계적으로' 의사면허 정지 또는 취소와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또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들의 근무상황을 매일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개시 명령 후 복귀했다가 다시 근무하지 않는 행태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최근 주요 수련병원에 전공의들의 사직, 연가, 근무 이탈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매일 1회씩 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명령을 내렸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16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19일까지 해당 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에는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9일까지 얼마나 많은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할지가 20일부터 의료 현장에서 발생할 혼란이 얼마나 클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은 시작이 됐지만 보건복지부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자 상당수는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가 지난 16일 전공의의 집단 사직서가 제출되거나 제출이 의심되는 12개 수련 병원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235명이 사직서를 냈으며 이들 가운데 103명은 실제로 근무를 하지 않았다. 사직서가 수리된 병원은 없었다.


복지부는 이들 103명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100명은 현장에 복귀했으나 3명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 3명이 속한 병원의 수련 담당 부서로부터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고 추후 처분을 결정할 계획이다.


의협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17일 첫 회의를 열고 “전공의들의 자발적 사직을 지지한다"면서 “정부가 겁박을 지속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택우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39명이 온·오프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의협 비대위는 전공의 대표를 위한 위원 4자리를 마련했지만 전공의들이 의협 비대위에 참여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비대위는 일요일인 오는 25일 전국 대표자 비상회의와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전체 의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이른 시일 내에 추진할 계획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지난 16일 밤 비상대책위원회 임시총회를 열고 20일을 기점으로 각 단위의 학칙을 준수해 동맹(집단)휴학 및 이에 준하는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의대협은 40개 의대 등이 참여하는 단체로 지난 15일에도 35개 의대의 대표자들이 같은 내용의 결의를 한 바 있다.


교육부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대해 지난 16일 의과대학 교무처장들과 온라인 회의를 열고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들어올 경우, 요건과 처리 절차를 정당하게 지켜 동맹휴학이 승인되지 않도록 학사 관리를 엄정히 해달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기계적 법 집행', '면허 취소' 등을 언급하며 전공의들을 압박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이 확인되면 즉각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면허정지 등 조처를 할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최고 징역 3년 등의 벌에 처한다"며 “만일 전공의들이 장기간 복귀를 하지 않아서 (병원) 기능에 상당한 마비가 이뤄지고, 실제로 환자 사망 사례 등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면 법정 최고형까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 휴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면 복지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고 이 명령을 위반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1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의사들 사이에서 여론을 탓하는 발언까지 잇따르면서 의대 증원에 대해 여론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의사 파업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답했고,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응답은 16%뿐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자의 81%,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73%가 각각 긍정적이라고 답해 여야 지지층 사이에 이견도 없었다.


이미 환자단체(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한국루게릭연맹회 등 6개 중증질환 관련 단체), 노조(보건의료노조). 시민단체(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사회 각계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을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다.


의료 현장은 이미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분주한 모습이다.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는 일을 가정해 비상 체계를 논의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고 있다. 교수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주치의로서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등 '병원의 손발' 역할을 한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병원 내에 '수술실 운영 관련 공지'를 내렸다. “19일 오전 6시부터 전공의 부재 상황이 예상돼 마취통증의학과가 평소 대비 50% 미만으로 수술실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19일까지 수술 예정 환자 중 입원 대상과 연기 명단을 입원원무팀에 제출해달라“는 내용이다.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역시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하고 있고,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 20일에는 응급수술만 진행할 예정이다. 일부 병원은 환자들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거나 수술 연기가 가능한 환자의 명단을 취합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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