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전원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서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병원들은 잇따라 '비상체제'에 돌입했지만 전국적 집단사직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사태가 장기화하면 환자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대비하고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집단행동 시 정부는 공공의료 기관의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집단행동 기간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집단행동이 본격화하면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특히 중증 응급환자들이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여 비상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며 “응급·중증 수술을 최우선으로 대응하고, 필수의료 과목 중심으로 진료가 이루어지도록 체계를 갖추겠다. 상황 악화 시 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1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사직서를 들고 있다.(사진=연합)
◇ 빅5 전공의들 무더기 사직…집단행동 전국 확산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날까지 전원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목 전공의들은 하루 앞선 이날 오전 현재 4년 차를 제외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모두 사직서를 냈다. 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의 한 전공의는 공개적으로 사직의 뜻을 표하며 “19일 소아청소년과 1∼3년 차의 사직서를 일괄적으로 전달하고,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간다"고 알린 바 있다.
세브란스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도 이날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 회장은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애초에 응급실은 문제가 많았고 동료들이 언제든 병원을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 따윈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의 꿈,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며 “돌아갈 생각 없다"고 덧붙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날 오전 부산대병원 소속 전공의 100여명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부산대병원은 이들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출근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동아대병원 전공의 10명가량도 이날 오전 사직서를 병원에 담당 부서에 제출하려 했지만, 병원 측에서 이를 반려했다.
대전성모병원 인턴 21명 전원과 레지던트 23명(전체 48명) 등 전공의 44명은 사직서를 내고 이날 오전부터 출근하지 않고 있다. 대전을지대병원 전공의협의회장도 이날 정오 기준 병원 측에 전공의 42명의 사직서를 모아 제출했다. 대전선병원 전공의 21명 중 16명도 이날 사직서를 냈고, 건양대병원과 충남대병원 등의 전공의들도 사직서 제출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제주대병원의 경우 지난 16일부터 이날 현재까지 파견의 18명을 포함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 93명 중 53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 한라병원도 파견의 10명을 포함한 전공의 23명 중 일부가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의 경우 전날 오후 6시 기준 길병원은 전공의 196명 중 42명, 인하대병원은 158명 중 64명, 인천성모병원 92명 중 38명이 각각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전북대병원 20개 진료과 전공의 189명 전원은 이날 사직서를 제출한 뒤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할 예정이다.
광주·전남 지역 3차 병원인 조선대병원에서는 지난주 7명 전공의가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냈고, 전남대병원 전공의협의회는 구성원 320명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사직 여부를 '개별적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전국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는 19일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시민들이 진료 접수를 하고 있다.(사진=연합)
◇ 의료현장은 벌써 대혼란…환자들 발동동
하지만 일선 병원의 대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특히 필수의료의 핵심을 맡는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면서 암수술, 출산, 디스크수술 등 긴급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 서울 시내 주요 병원에서 수술 스케줄이 조정됐다는 사례는 잇따르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마취과 전공의는 수술 중 마취과 교수의 마취 업무를 보조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등의 역할을 한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했을 때 혼란이 가중하지 않도록 수술과 입원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대체인력을 어떻게 배치할 지 등을 다각도로 논의 중이다.
대부분 병원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응급·위중한 수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전면 파업으로 인해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하면서 “그대로 수술받을 수 있는 거냐"는 환자들의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빅5 병원에서 오는 21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암 환자는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원 안내하는 문자가 오지 않아 전화해보니 월요일(19일)은 돼야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일단 대기하라고 하더라"며 “입원해도 수술이 취소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환자의 사연도 전해졌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사직이 가시화하면서 수술 일정이 조정되는 모양새다.
병원들은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임상강사, 펠로 등으로 불리는 '전임의'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할 경우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부모들이 어린이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
◇ 정부 진료유지명령 발령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현장을 지켜달라고 당부하면서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에 대해서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며 '충격적', '참담함' 등의 표현을 쓰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복지부는 이날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이전에 내렸던 명령이 필수의료에 대해 병원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이번 명령은 모든 전공의에게 진료 현장을 떠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더 나은 여건에서 의사로서의 꿈을 키우고 과중한 근로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육과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개선하겠다"면서 “환자를 등지지 말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현장 점검에서 진료 업무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업무개시(복귀)명령을 내리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의사면허 정지 등 조치하고 고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