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가설협회 “건설경기 악화 속 이중고”
중처법 대응 방안 및 임금체불 해소 앞장
“고위험군인 건설가설업계는 대부분이 10명 정도 일하는 영세업체들이다. 건설 경기가 악화되면서 공사장이 줄어들어 굉장히 힘든 상황인데, 중대재해처벌법까지 겹쳐 다들 마음 고생이 많다."(건설가설업체 A대표)
◇ 50인 미만 가설업계, 중처법 처벌 위험 노출
최근 에너지경제신문 기자와 만난 건설가설업체 A대표는 이같이 한탄했다.
건설가설업은 건설현장에서 건축물이나 구조물을 시공할 때 필요한 임시 설비(자재)를 설치한 구조물로, 공사가 완료되면 철거하는 임시구조물이다. 보통 현장 작업자가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파이프와 발판 등이 엮인 비계가 가설구조물로 불린다 또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타설되고 경화될 대까지 떠받치는 동바리 등도 대표 가설기자재라 할 수 있다.
건설현장의 대부분 사고가 추락 사고라고 볼 때 추락사고 중엔 가설구조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해 늘 안전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같이 현장에 쓰이는 가설기자재는 공장에서 절단과 용접 등 가설제조업을 통해 제작되고, 이를 운송 등을 통해 현장에 대여하는 가설임대업을 통해 조달한다. 가설제조업이 임대업을 겸하는 굵직한 업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설업체는 임대업을 주로 하며 직원은 10명 안팎의 영세한 규모다.
가설임대업의 중대재해는 지게차 작업에서 위험이 노출돼 있다. 아직 가설업체가 지게차로 인한 사망사고가 나온 적이 없지만, 지게차도 고위험군에 속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건설가설협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지게차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41명이나 된다.
지게차 작업 중 주변 작업자가 부딪히거나 지게차가 전도돼 운전원이 깔리는 경우, 상하차 작업 중 자재낙하로 주변 작업자가 깔려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건설가설협회에선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게차에 대한 교육과 설비안전점검, 작업계획서 작성 등 지원을 하고 있다.
◇ 임금체불 등 악재까지 겹쳐 업계 고사직전
건설경기가 극도로 침체되면서 국내 건설가설업계는 최근 보릿고개를 맞이한 상태다. 통계청의 건설경기동향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건설수주는 전년 대비 19.1% 감소했다. 게다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인해 건설업 임금체불액도 크게 늘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5일 '체불 예방 빚 청산 집중 지도기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임금체불액은 전년 2925억원 대비 24.4% 오른 4368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자연스럽게 전문건설업과 거래하는 '병(丙)'에 위치한 가설업의 임금체불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년간 건설가설협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총 2019억원으로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건설업에 비해 현저히 낮음에도 건설업 대비 체불액이 4분의 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가설업체 A대표는 “자잿값은 전년 대비 50%나 올랐는데 현장에 주는 임대료는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고, 전문건설업계도 어렵다 보니 미수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협회를 통해 지난해 가설업체 중 전문건설업이 자재를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분실에 대한 무책임, 대금 지급 거절 등 제기된 민원이 111건이나 됐다.
대여대금 체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1대 국회에 가설기자재 대여대금지급보증제 도입을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제22대에서 재차 발의해야 하는 실정이다.
◇ 가설협, 위험성평가 등 대응방안 지원 나서
올해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수 5인 이상의 모든 기업에 중처법이 적용된다.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고 이행하는 것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는 기업 스스로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지속 개선하는 체계를 뜻한다. 안전보건관리체계는 경영자의 리더십과 인력(안전보건관리자)·예산 등 자원 배정, 유해·위험요인 파악·개선, 안전보건관리체계 점검·평가하는 순서로 실행해 나가야 한다.
중요한 건 중대산업재해 발생 후 사망자가 1명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다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50인 미만 사업장 특히, 10인 정도밖에 직원이 없는 사업장에선 쉽게 할 수 없는 대처다.
이에 건설가설협회에서는 위험성평가를 컨설팅하거나 실시계획서 작성 등을 통해 업체의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있다. 위험성평가는 반기 1회 이상 점검해야 하는 유해·위험요인 파악·개선과 안전보건관리체계 점검·평가를 대신하는 평가로 볼 수 있다.
위험성평가는 총 5단계로 위험을 도출하고 안전조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정성 파악과 위험성 감소 대책 수립 및 실행과 기록관리 등의 절차로 이뤄진다. 위험성평가만 제대로 갖춰도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 등에 대해 경영주가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조용현 건설가설협회 회장은 “협회는 시장을 흐리는 불합리한 거래관행 개선과 부실건설업체 정보 파악 등으로 임금체불을 최소화하고, 가설업계 실정에 맞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해 중처법 전면 시행에 따른 위기관리에 앞장설 것이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불합리한 거래관행이란 일명 '턴키'로 불리는 일괄입찰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 가설업체가 자재를 임대해줌과 동시에 비계공사 등 공사설계도면까지 작성토록 계약하는 방식이다. 본래 공사설계도면은 시공사에서 진행해야 하나 업계가 힘들다 보니 이같은 관행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턴키는 정해진 단가 안에서 종합적으로 모든 작업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어느 한 곳에서 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예로 비계공사 설계도면 작성시 주요자재를 누락하거나 비계기둥 설치간격을 늘리는 등의 부실도면 작성과 부실공사로 비계구조물 붕괴 등의 안전사고 발생까지 우려되는 것이다.
최형철 건설가설협회 상근부회장은 “안전한 비계공사를 위해 시공자는 건설기술진흥법령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비계설치 설계도면을 작성·시공해야 한다"며 “자재 임대업자에 대한 자재대금 지급은 투입자재와 사용기간(일수)에 따른 대금을 지급하는 '일단가 방식' 계약이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