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노후주택 노인 거주 비율 70% 이상
붕괴·화재·침수 등 위험 노출…정비 추진은 힘들어
수원서 산·관·학·연 한 자리 모여 활성화 방안 모색
이주대책 보장·지자체 친환경 의지·용적률 상향 등 제시
“서울이나 수도권 외곽의 노후 주택들은 침수나 화재에 취약하고 구조가 느슨해 붕괴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주체들의 의지가 약한 데다 경제성이 없어 재정비를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큰 사고의 우려가 높다."
경기 지역 한 주택건설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도심 외곽 노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노후 단독주택의 안전이 매우 취약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 가구의 안전한 주거환경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노후 주택, 안전 취약하지만 재정비 힘들어"
10일 주택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 외곽 지역, 즉 경기도 일대 다세대·단독·연립 주택 중 준공 후 20년 이상 경과한 노후 주택의 비율은 전체의 3분의1이 넘는다. 2020년 기준 전체 152만 가구 중 53만9000가구(35.4%)다. 또 이같은 노후 주택에는 고령자들이 주로 산다. 60세 이상 집주인은 72%나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이 거주하는 노후주택들이 층간소음과 균열, 누수는 물론 방범이나 구조안전, 화재안전성 등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가 2020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노후 주택은 사용과정에서 구조검토 없이 무리하게 증축하고, 임의로 용도변경을 해서 건물구조가 취약해 붕괴위험이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2019년 조사에서도 노후 단독주택의 전기 설비는 강화된 안전 기준을 적용받지 않아 화재 위험성이 높다. 여름철 침수 위험도 크다. 지난 2022년 8월 폭우 당시 노후 반지하 주택들이 주로 물이 잠겨 참사를 겪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우선 도심 상업 업무지역에서 먼 곳이 대부분이어서 사업성이 떨어져 개발 사업 추진 자체가 힘들다. 또 고령의 소유자들은 여유자금도 부족하고 이주나 임시거주에 대한 부담을 느껴 재정비 의지가 거의 없다. 게다가 노후 저층주거지는 주차장과 도로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데 지자체의 지원은 미흡해 정비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 규제 완화해 친환경 재건축 등 유도해야
이에 정부와 학계와 주택건설업계는 노후 주택단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노인가구의 안전과 소득증대를 위한 소규모재정비를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8일 경기 수원에서 열린 '도시 내 노후주택 정비사업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 홍경구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는 노후주택을 정비하기 위해 주민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거환경만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정비사업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며 “노인들이 염려하는 이주나 임시거주에 대한 보장성만 잘 안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동의를 얻기 쉬울 것이다"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친환경 건축물로 재정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토론회에서 박병윤 수원과학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물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녹색건축물 확대를 위한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이 있는데 지자체가 이 법을 노후주택 정비에 활용하면 된다"며 “그린리모델링이나 제로에너지건축물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니 지자체에서 이를 정비사업에 연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비사업은 단순 주거환경만 개선하는 경우는 쉽지 않고 결국 사업성이 뒷받침돼야 추진할 수 있다. 사업성의 핵심은 '용적률 상향'이다. 용적률을 높여서 분양이나 전월세 등을 통해 수익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현 주택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용적률을 사업성이 확보 가능한 수준(최대 500%)까지 올리고, 공용주차장을 확보하면 주차장 의무설치 기준을 완화해주는 등 규제를 완화해야 사업성이 높아져 주민 동의율도 높일 수 있고, 정비사업도 신속히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도 이날 토론회에서 수도권 노후 주택 재정비 사업의 용적률 완화 등 규제 정비에 공감을 표시했다. 배윤형 국토부 주택정비과 사무관은 “최근 공사비가 오르고 분양시장이 침체한다는 인식이 있어 정부 차원에서 사업성을 올리는 건 쉽지 않다"면서도 “정비사업 절차를 줄이고 용적률 인센티브는 최대한 주면서 기반시설을 적절히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이어 “사업성을 개선하기 위해서 사업자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지자체가 기부채납을 적절하게 받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