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셰셰'(謝謝·중국어 고맙습니다) 발언이 4·10 총선 한복판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충남 당진 전통시장을 찾아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라며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있나"라며 “우리는 우리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중국 불법 어선이 서해까지 들어오고 한복, 김치를 자기들 문화라고 주장하고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잘못된 주장해도 이 대표는 그 뜻을 받아들여 '셰셰'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받아쳤다. 양안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냥 구경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블록화된 세계정세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으로 연결되는 국제해로의 요충에 있는 대만은 미국에게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교두보와 같다. 그리고 파운드리 분야의 절대 강자인 TSMC로 대변되는 대만의 반도체 역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이다. 대만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완성하는 핵심요소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대만을 차지했을 때 누릴 수 있는 가치가 막대하다.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며 대만해협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2022년 8월 초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다. 방문 직후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주위의 6개 지역에 항행금지구역을 선포, 대만을 포위하고 실탄 사격과 미사일 시험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 국제 정치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다음 화약고가 대만해협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미국 군사 전략가들은 중국주도의 무력 통일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2021년 3월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 필립 데이비슨 제독은 퇴임을 앞둔 의회청문회에서 향후 6년 내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이 2027년 이전에 대만을 침공할 것을 군에 지시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22년 10월 제 20차 중국 공산당 대회 연설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듯이 상황에 따라 대만해협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관건은 절대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에 달려 있으며, 중국 국내사정이나 대만독립 움직임 등이 심각해지면 부담이 큰 전쟁은 아니더라도 해상봉쇄 등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대만해협에서 유사사태 발생은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의 안보에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따라서 대만문제에 관한 확고한 입장과 대응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한국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중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도 방미 당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명시해 처음으로 대만문제를 언급했고,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 때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그 해 8월에 개최된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에는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 촉구" 내용이 명시됐다.
한국이 대만해협에 대한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은 이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유지가 한국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고 주한미군이 동원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직·간접적인 연루 가능성이 증대되는데, 중국군은 주한미군의 대만 이동을 방해하기 위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도발하여 미군의 이동을 막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할 우려가 있다. 또한, 대만해협이 봉쇄되면 한국의 경제안보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을 오고가는 많은 화물선과 석유·천연가스 운반선이 대만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은 한국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국익에 직결되며, '셰셰'하면 한국의 국익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의로 행동하면 중국도 선의로 반응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로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결코 지킬 수 없다. 국제관계에서 자국의 국익이 관련되어 있으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국익이 손상된다. 그리고 국제평화와 직결되어 있으나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워하고 회피하면 평화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