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국제감축사업,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이 핵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4.29 09:14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서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적 차원에서 긴박한 도전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기후변화 저지를 위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파리협정은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가능한 한 1.5도 섭씨 이하로 유지하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전신인 교토의정서에 비해 파리협정은 개도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다양한 지원 메커니즘과 감축의 투명성과 도전성을 높이는 여러 장치들을 배치했다.


그런데 협정 출범 9년이 지난 지금도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합의되지 않는 조항이 있으니, 바로 파리협정 제6조이다. 제6조는 국제협력에 의한 감축에 관한 규정이다. 그만큼 당사국 간 이견이 크다는 뜻일 거다.



교토의정서에서 국제감축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청정개발체제(CDM)이었다. 온실가스 감축 비용이 낮은 지역에서 감축활동을 벌이고 감축량을 이전해서 사용하거나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발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개도국도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나 탄소 삼림 프로젝트에는 자금 지원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CDM은 저비용의 감축사업만을 선호한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아울러 CDM 프로젝트의 혜택이 일부 국가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분석 결과와 함께 파리협정 체제에서는 저개발국가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량 및 탄소 상쇄를 통한 제거(removal)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측정 도구의 불확실성, CDM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이 추가적이며 영구적인지에 관한 의문, CDM 프로젝트 재원이 부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야기한 경우 등 실제 감축 효과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등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비판을 배경으로 등장한 것이 파리협정 제6조 체제이다. 6.2조는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감축을 추진하고, 6.4조는 다자 메커니즘을 구축해서 민간이 배출권을 국제적으로 이전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내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많은 제약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외 감축분을 포함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2023년에는 NDC의 부문 간 목표 조정을 하면서 국외감축분을 3350만톤에서 3750만톤으로 늘려 잡았다. 이는 산업부문의 목표 2307만톤 보다 더 많은 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외감축의 달성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국외감축 사업은 대부분 개도국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CDM의 경험에서 개도국은 국제감축 협력사업이 그다지 자국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필자의 연구팀이 8개국의 CDM 프로젝트 승인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조사에서는 기존 프로젝트들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다양한 사례가 제시되었다.


또한 국제 감축사업에 대한 파리협정의 룰이 교토의정서 보다 훨씬 엄격해지기도 했다. 국제감축 사업이 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추가성의 원칙이라는 것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특정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감축이 기존의 법률이나 규제, 다른 정책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고, 파리협정 6조 메커니즘에 따른 지원 없이는 재정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프로젝트여야 하며, 기존의 기술이나 관행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파리협정 6.4조의 새로운 방법론은 배출권 발급량을 실제 감축량보다 낮게 설정함으로써 감축된 배출량의 일부는 개도국이 직접 활용할 수 있게 하고, 기술 수명보다 짧은 크레딧 발급 기간을 설정해 후반기 이익이 개도국에 귀속되도록 하는 등 개도국이 장기적인 이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파리협정 하의 국제감축사업은 지속가능발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외에도 A 국가에서 발생한 감축량이 우리나라로 이전될 경우, 상응조정에 따라 A 국가는 해당 감축량을 자신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추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감축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투명성 원칙 등이 요구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탄소 규제가 느슨한 지역에서 강한 지역으로 탄소가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화되고 있는 탄소무역규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적용 확대 등으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감축수단이 제한적인 많은 기업들이 국제감축사업과 자발적 탄소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 또한 NDC 달성을 위해 국제협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보면 국제감축이 국내에서의 감축보다 더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교토의정서 때와 달리 개도국 또한 감축 의무를 지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국제감축의 가능성은 감축사업이 개도국의 지속가능발전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파리협정 6.4조는 지속가능발전메카니즘이라 불리기도 한다. 과거 CDM 프로젝트에서 지속가능성 평가보고서는 형식적 서류에 불과했지만, 파리협정에서는 지속가능성이 프로젝트 승인과 검증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감축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 우리 입장에서 얼마나 저렴하게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토지, 산림, 수질, 대기오염 방지 등의 환경 개선과 재생에너지의 확산, 교육과 기술 훈련 프로그램 등을 통한 지역 사회 역량 강화와 이를 통한 소득 증대 등을 위한 계획도 진정성 있게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대형 에너지개발사업에서 인허가와 설비건설 만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이 주민수용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한다. 국제감축사업도 사업대상 국가와 프로젝트 실행지역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막연히 국내감축보다 국외감축이 더 쉽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파리협정에서 국제감축의 타당성평가 및 검증에 지속가능발전 평가 의무화와 상응조정 등의 강화된 조건이 추가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국제감축이 우리에게 NDC 달성의 대안이 되려면 발상의 대전환과 철저한 준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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